당초 정부 과천청사 인근 청국장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장관(59)이 청국장, 고등어조림, 두부요리 등을 좋아해서다. 하지만 인터뷰를 앞두고 막판에 이탈리아 레스토랑 ‘플로라’로 바뀌었다. 직접 재배한 꽃을 식탁에 올리는 정성과 깔끔한 피자 맛이 맘에 들어 젊은 직원들과 자주 찾는 이곳이 번뜩 떠올랐다고 권 장관은 설명했다.

권 장관과의 첫 번째 먹거리 얘기는 햄버거와 피자였다. 고향이 경북 의성 농촌마을인 것과 관련, 가볍게 던진 질문이 이야기 실타래를 풀었다. “어렸을 때 서양음식을 먹을 기회가 있었냐”는 물음에 30분 가깝게 흥미있는 옛추억을 쏟아냈다. 고등학교 때 서울로 유학와 입주교사(남의 집에 들어가 함께 살면서 가르치는 과외선생)로 고학했던 기억, 미국 파견 때 햄버거·피자로 끼니를 때웠던 얘기, 노르웨이 북극다산기지에서 순록 고기로 만든 수제 햄버거를 먹었던 경험 등…. 최근 임신 8개월인 딸에게 모처럼 사준 음식도 피자였단다.

주변 사람들에게 소탈하고 담백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술술 풀어 나가는 그만의 화술에 푹 빠져들었다.

◆넉넉잖은 시골집 6남매의 둘째

의성군 옥산면의 작은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권 장관은 ‘보릿고개 세대’다. 꽁보리밥에 ‘짠지’(무를 절여 만든 김치)가 주식이었다. 춘궁기 때는 소나무 껍질을 벗겨 수액(樹液)으로 허기를 채웠다. 6남매 중 둘째인 그가 속칭 ‘KS(경기고·서울대) 라인’을 거쳐 고시 합격까지 했던 비결은 뭘까.

“형은 장남이니까 땅을 물려받아 농사를 지으면 됐지만, 저는 기대할 게 없었거든요. 주변 친척들도 너는 공부해서 먹고 살거나 남의 집에서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씀했어요. ‘자력갱생’하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웃음)”

권 장관은 대구중을 거쳐 경기고에 진학했다. 경기고로 가게 된 사연도 재미있다. “집에서는 대구상고를 가라고 했어요. 주산을 못해서 상고 가긴 싫었죠. 돈을 벌려면 서울로 가야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으로 경기고 시험을 쳤어요.”

고등학생 때 돈암동에서 입주교사로 지낼 때 집 주변에 빵집이 있었다. 집주인이 사온 카스텔라 맛을 아직도 기억한단다. 권 장관은 형편이 어려워 빨리 졸업하기 위해 월반을 시도했다. 그러나 무리해서 공부하다 몸이 아파 한 해 휴학했다. 이 때문에 고등학교 동기가 두 기수에 걸쳐 있다. “하영구 씨티은행장은 2학년 때 짝궁이었어요. 권오규(전 경제부총리) 박병원(은행연합회장) 김석동(금융위원장) 신창재(교보생명 회장) 이태식(한양대 토목공학과 교수) 등 많아요. 지금도 가끔 만나는 친구들입니다.”

◆토목공학과 진학에서 국토부 장관까지

꽃이 담긴 채소 샐러드와 빵을 먹고 나니 피자가 나왔다. 토마토 소스에 모차렐라 치즈가 들어간 마르게리타 피자와 블루치즈 등 4가지 치즈가 들어간 포르마지오 피자다.

권 장관은 서울대 토목공학과 진학과 건설부(현 국토해양부) 근무 등 건설과의 인연을 풀어갔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학 시험을 앞두고도 진로를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법대를 가고도 싶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았어요. 뒷자리 친구가 어느날 토목과를 권하는 거예요. 댐·도로·교량 건설 등 스케일이 큰 일을 하는 것이니까 제 성격과 맞다며 권유했죠. 그 말을 듣고 지원학과를 당당하게 ‘土木(토목)’이라고 써냈어요.”

토목과 졸업 후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중 공학 이외 분야로도 시야를 넓혀 보자는 생각에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진학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행정고시를 준비했고 1978년 행정고시 21회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평택세무서에서 잠깐 근무한 뒤 1982년 건설부로 발령이 났다. 건설부에서 입지산업과 하수도과 주택정책과 총무과 등을 거쳤다.

“입지산업과에서 국가산업단지 등을 지정할 때 보람을 느꼈어요. 하수도과에서는 밤샘하면서 각종 제도를 만들었고, 분양가 자율화 이전인 1996년 연립주택 철골조주택 등의 규제 완화를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권 장관은 두 차례 은퇴 경험(백수 경험)이 있다. 2006년 말 주택토지실장을 마친 뒤 7개월가량 쉬었다. 이후 도로공사 사장과 국토부 차관을 그만둔 뒤 잠시 쉬다가 작년 5월 장관에 취임했다.

“직장을 그만두면 처음 두어 달은 주변에서 만나자는 사람이 많아요. 이런저런 모임에도 나가고요. 하지만 석 달째부터는 대부분 끊겨요. 자신의 인간관계 성적표를 확인해볼 수 있죠. 두 차례 백수 생활에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그러다 일자리를 찾으니까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웃음)”

◆4대강·철도 경쟁체제 등 난제 해결 앞장

피자를 먹은 뒤 주문한 파스타가 나왔다. 권 장관은 마레토마토 파스타를 시켰다.

“한번 드셔 보세요. 면과 소스의 궁합이 잘 맞아요.” 모두 식사에 몰입하느라 잠시 조용했다.

식사 마무리 무렵에 국토부 현안에 대해 몇 가지 물어봤다. 신경 쓰는 안건이 있느냐고.

“분양가 상한제 탄력 적용,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등 규제 완화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선진국형 관광휴양산업인 ‘마리나산업’ 토대 마련에도 신경을 써볼 작정입니다.”

권 장관은 ‘4대강 살리기 사업’ 부분에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문객이 13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는 태풍 홍수 가뭄 등의 예방 효과도 톡톡히 봤다는 것이다.

“4대강 공사 과정에서는 운도 많이 따랐던 것 같아요. 처음 모래를 준설할 때는 다행히 비가 적게 와 문제없이 공사를 잘 했잖아요. 지난해에는 폭우가 내려 안전 테스트를 한 셈이고요. 올해는 가뭄 영향을 검증하게 됐죠. 낙동강 칠곡보는 암반 위에 보를 설치해 바위가 무너지지 않는 한 안전에 문제가 없습니다. 4대강은 거의 매주 찾다시피해 애정이 각별합니다.”

철도 경쟁 체제 도입도 민감한 문제다. 권 장관은 “내년 초에 민간 사업자가 정해져도 늦지 않습니다. 공감대 확산을 위해 노력해왔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추진하고 있어서 잘 될 것입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경쟁이 독점보다 나은 것 아닌가요.”

"볼거리 많은 국토 만들어야 외국 관광객 몰려"

◆부동산 규제 좀 더 풀어야

국민들이 가진 관심사 중 하나는 주택가격 하락과 거래 부진 등 부동산 시장 움직임이다. 장관의 생각이 궁금했다. 그는 “총부채상환비율(DTI)이 가계부채 문제와 연계되긴 하지만 원래 주택가격 급등 때문에 강화했던 것인 만큼 이젠 완화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민의 의미를 묻자 “시장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적용하고, 금융회사 자율에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 장관은 부동산이 경제에 끼치는 의미도 강조했다. “부동산은 경기 유발 효과가 큽니다. 건설산업은 작년 기준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3.6%, 고용의 7.6%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건설자재업, 장비업, 중개·이사업 등 연관산업의 생산·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지속적 투자가 유지돼야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야말로 국가가 역점을 둬야 할 생산적 복지입니다.”

◆국토·도시·주거의 ‘품격 향상’이 화두

권 장관은 국가의 품격을 결정짓는 요소를 네 가지 꼽았다. 먼저 신뢰·질서의식 같은 국민성을 비롯해 △제품의 품질 수준 △사회를 지속시키는 소프트웨어(시스템) △국토·도시공간의 품격 등이다.

“국토해양의 정체성과 운영 방향은 시대에 따라 달라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공급’이 중심이었죠. 주택의 경우 품질보다 수요 충족에 매달렸지요. 앞으로는 국토·도시·주거 부문이 품질 경쟁력을 갖도록 하는 방향으로 정책 목표를 세워야 합니다.”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권 장관은 국토의 품격을 화두로 꺼냈다. “이제는 국토 전체를 문화·예술·디자인과 연계시켜서 봐야 할 때입니다. 올해 외국인 관광객이 처음 1000만명을 넘어섰습니다. K팝 등 한류 열풍 영향이 컸죠. 외국인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줄 만한 볼거리를 꾸준히 만들어야 합니다. 한옥 등 한국형 주거문화도 좋은 관광자원이 될 수 있죠. 사회간접자본의 공급·관리도 품질이 높아져야 합니다.”

권 장관의 바람은 ‘전 국토의 공원화’다. 공원처럼 아름답게 개발·관리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인구에 비해 땅이 좁습니다. 산지를 뺀 평지만 따지면 국민 1인당 400㎡(120평)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이용 가능 면적은 200㎡ 남짓입니다. 그래서 더욱 잘 다듬고 가꿔야 합니다.”

내년 2월 퇴임 이후 계획을 물었다. “챙겨야 할 업무가 많아 생각을 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보다 신문·TV를 좀 더 여유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권도엽 장관의 단골집 플로라 4가지 치즈 어우러진 포르마지오 인기

정부 과천종합청사 인근 문원동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으로 2010년 2월 문을 열었다. 과천 IC에서 매봉산 자락으로 가는 길에 있다. 서울지하철 4호선 정부과천청사역에서 내리면 택시 기본요금 거리다. 2층 높이의 단독 건물로 잘 꾸며진 정원과 유럽풍 실내 인테리어가 우선 눈길을 끈다.

서울랜드와 국립현대미술관도 가까워 주말에는 연인이나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아 예약이 필수다. 20년 경력의 서울 신라호텔 출신 요리사가 내놓는 피자와 파스타가 수준급이다. 조미료 대신 좋은 식재료를 사용해 맛을 낸다는 게 이주영 사장의 설명이다. 토마토와 신선한 바질에 모차렐라 치즈로 맛을 낸 이탈리아 정통 피자인 마르게리타(1만7000원)와 고르곤졸라 그리웨르 등 4가지 치즈가 어우러진 포르마지오 피자(1만9000원)가 인기 메뉴다.

카르보나라(1만7000원)와 해산물 스파게티(1만9000원) 등 파스타는 40~50대 중년 고객들도 많이 찾는다. 피자와 스파게티로 구성한 2인용 커플세트(5만5000원)는 물론 스테이크를 포함한 4인용 패밀리세트(10만원)도 있다. 매일 직접 구워내는 담백한 빵인 팽 드 캄파뉴도 별미다. 식사 후에는 넓은 정원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좋다. (02)503-4564

김진수/김보형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