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를 지속적으로 척결해야 한다.”(1992년 1월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국가 주석의 남순강화·南巡講話)

“역대 정권의 중요한 붕괴 원인 중 하나가 바로 부패다.”(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취임 후 첫 정치국 집체학습연설)

덩샤오핑 이후 20년간 최고지도자가 세 차례 바뀌는 동안에도 근절되지 못할 만큼 중국 관료부패의 뿌리는 깊다. 일가 재산이 27억달러(약 3조원)에 달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부터 말단 관리까지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패가 공산당 집권의 정당성까지 흔든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5일 새로 선출된 중국 5세대 지도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부패 척결 발언을 쏟아내는 이유다.

◆1년차 공무원부터 총리까지 부패 스캔들

중국의 관료부패는 지방 신입 공무원부터 중앙 고위직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지난 21일에는 올해 29세인 여성공무원 리리(李麗)가 윈난성의 한 농촌마을에서 170여만위안(약 3억원)을 착복한 사실이 보도됐다. 2010년 10월 공무원시험에 합격한 리리는 작년 4월부터 1년여간 농민들에게 돌아갈 지원금을 가로챘다.

중국에는 성상납을 받은 고위 관료들의 섹스동영상 유출사건도 자주 일어난다. 지난 23일에는 레이정푸(雷政富) 충칭시 베이베이구 당서기가 10대 여성과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급격히 확산돼 파문을 일으켰다. 해당 동영상을 공개한 시민운동가는 다른 충칭시 공무원 4명이 성접대를 받는 동영상을 확보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2006년에는 류즈화(劉志華) 당시 베이징시 부시장의 성관계 장면이 담긴 영상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배달되기도 했다. 류즈화는 베이징 교외에 호화관저를 차려놓고 여러 정부(情婦)와 애정행각을 즐겼는데, 불만을 품은 정부 한 명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제보한 것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 등을 통한 부패 제보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주 헤이룽장성 솽청(雙城)의 방송사 여성 앵커는 현지 고위 관리인 쑨더장(孫德江)이 자신을 수십년간 성폭행해 온 사실을 웨이보에 폭로했다. “모친의 취업을 빌미로 성관계를 요구했고 임신 7개월인 상태에도 성폭행해 결국 이혼했다”는 주장이다. 양다차이(楊達才) 산시성 안전생산감독관리국장은 차고 있는 고급 시계가 자주 바뀌는 사진이 네티즌들 사이에 논란이 되면서 당국의 조사를 받았다.

이 같은 관료 부패는 민간 영역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사회적 병폐가 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베이징에서 공립명문고에 입학하려면 8만~13만달러(약 8600만~1억4000만원)를 내야 한다고 보도했다. 4800달러를 담당자들에게 주면 입학시험 점수를 1점씩 높일 수 있다.

생명과 직결되는 의료행위도 예외가 아니다. 병상이 부족한 중국에서는 병원 입원을 위해서도 뇌물을 줘야 한다. 수술을 하게 되면 대개 1000~6000위안까지 담당 의사에게 지급한다.


◆부패관료, 20년간 294만명

공산당 감찰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92년 10월부터 올 6월까지 293만9370명의 부패 관료가 적발됐다. 연평균 14만7000명이 부패사건에 연루된 셈이다. 지난 14일 폐막된 18차 당대회에 보고된 지난 5년간 부패관료 숫자는 66만8429명으로 5년 전(67만7924명)과 큰 차이가 없다.

이들이 뇌물로 챙긴 돈도 막대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인민은행은 1988년부터 2008년까지 20년간 각급 관료 1만6000~1만8000명이 8000억위안(약 140조원)을 해외로 빼돌렸다고 작년 6월 발표했다.

이마저도 실제보다 축소됐다는 것이 중국 안팎의 시각이다. 작년 말 기준 중국 공무원 전체 숫자는 8260만명. 관료 부패가 일상화돼 있는 점을 감안하면 연평균 14만명 적발은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작년 10월부터 1년간 해외로 빠져나간 민간자금만 2257억달러(약 244조원)에 이르며 이 중 상당 부분은 부패관료의 몫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권력에 가로막힌 부패척결 노력

시진핑은 전임 지도자들보다 더 강하게 부패척결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총서기 선출 후 1주일 동안 두 차례에 걸쳐 반부패 발언을 했다. 7명의 신임 정치국 상무위원 중 가장 과단성 있는 왕치산(王岐山)을 차기 중앙기율검사위원장으로 내정했다. 미국 클레어몬트 매케나대의 페이민신 중국정치학 교수는 “집권 공산당의 이미지가 공공연한 관료부패에 가려지고 있다”며 “단순한 국가 비효율을 넘어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위협하는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입법·사법·행정을 관할하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는 한 부패척결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영문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감독기관 역시 공산당에 소속돼 있는 만큼 독립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장칭송 법무법인 샹촨 대표변호사도 “공산당 간부들이 스스로를 해칠 부패 감독방안을 시행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