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3일 오전 6시16분
[마켓인사이트] 巨富들의 개인자산 관리…'패밀리 오피스' 시대
이민주 에이티넘파트너스 회장(64)은 1조원대 거부로 유명하다. 그가 투자했다고 알려진 종목 주가가 들썩일 정도로 증시에선 ‘큰손’으로 통한다. 이 회장은 케이블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인 씨앤앰을 운영하는 기업인이었다. MBK파트너스에 씨앤앰을 매각한 뒤 자기 재산만을 굴리는 ‘패밀리 오피스’를 만들어 전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원재연 가이저 회장(49)도 이 회장과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그 역시 큐릭스라는 SO의 ‘오너’였다가 2009년 태광그룹에 2500억원을 받고 회사를 매각했다. 이후 자신의 재산을 관리하기 위해 가이저를 세웠다.

한국형 ‘패밀리 오피스 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규모 운용자산을 가진 거부들과 가업 승계를 거부하는 재계 2세가 많아지면서 이들의 자산을 관리하기 위한 서비스도 각광받을 전망이다.

○SO에서 전업 투자자로 변신

한국의 대표적 패밀리 오피스는 이 회장이 이끄는 에이티넘파트너스다. 변호사, 회계사, 금융투자 전문가 등 임직원이 2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이 회장 개인 재산만을 운용한다.

이 회장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다양하다. 삼성생명이 비상장이었을 때 투자하는 등 주식 투자는 기본이다. 최근엔 미국 트리아나에너지 지분 14.6%를 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등 에너지사업에도 손을 대고 있다. 2010년 9월 미국 상업은행인 스털링에 원 회장과 공동으로 지분 투자를 하기도 했다.

원 회장은 2009년 말 가이저를 설립했다. 처음엔 주로 은행 출신 인력들을 채용하면서 채권에 투자하는 등 보수적 투자 성향을 보였다. 최근 들어선 하나대투증권의 이대식 씨를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영입하는 등 투자은행(IB)의 전문인력들을 끌어들이며 대체투자 쪽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패밀리 오피스 더욱 늘어날 듯

한섬을 매각해 4200억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한 정재봉 사장(71)도 비슷하다. 회사를 팔 무렵 정 사장은 ‘더 이상 기업 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정 사장의 관심사는 단연 부동산이다. 그는 한섬 사장 시절이던 2008년 한섬의 부동산사업개발부문을 분할해 한섬피앤디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이를 통해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정 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부동산 투자 전문가”라며 “서울 논현동 BMW 매장 건물을 비롯해 강남과 여의도에 투자한 건물이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요즘 내년 문을 열 예정인 남해 골프장에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국에서도 패밀리 오피스 사업이 전성기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한다.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아직까진 창업 1세대들이 가업을 놓지 않고 현역으로 뛰고 있지만 2세, 3세로 넘어가면서 가업을 포기하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며 “VIP투자자문의 목표도 한국 부자들의 패밀리 오피스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4000개 성행 중

‘패밀리 오피스’라는 개념은 한국에선 낯설지만 유럽 미국 등에선 19세기부터 시작됐다. 유대인 가문인 로스차일드를 비롯 미국의 록펠러가 대표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의 개인 재산만을 운용하는 캐스케이드 역시 ‘패밀리 오피스’ 범주에 들어간다. 스위스의 줄리어스베어은행은 귀족 가문 자산만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특화된 금융회사다. 미국에만 4000개 정도의 패밀리 오피스가 있다.

사모펀드(PEF)도 초기엔 유력 거부들의 사금고로 시작됐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PEF 시장에 연기금 등 공적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패밀리오피스와 PEF의 분리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