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무역 규모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1조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세계 무역 순위도 이탈리아를 제치고 처음 8위에 올라선다. 글로벌 경제위기와 각국의 보호주의 역풍 속에서 일궈낸 것이어서 더욱 값진 성과라는 평가다.
석유제품과 자동차가 선방하면서 선박과 정보기술(IT) 제품 부진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했다. 중소기업 비중이 높은 자동차 부품과 기계의 선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한 수출 증가도 1조달러 재달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다. 일부 품목에 쏠린 수출산업 구조와 중소기업 수출 활성화는 무역 2조달러 진입을 위한 과제로 지적된다.
2년연속 1조달러 돌파 … 이탈리아 제쳤다
5일 지식경제부와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12월8일 무역 1조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 첫 무역 1조달러를 달성했던 지난해(12월5일)에 비해 늦지만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올해 1~11월 무역 규모는 9796억달러로 월평균 무역 규모가 900억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올해 약 1조700억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다. 국가별 무역 규모 순위는 이탈리아를 제치고 8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2000~2002년 세계 13위권이던 한국의 무역 규모는 2003년 12위, 2007년 11위에 이어 2009년 10위권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2010~2011년에는 9위를 유지했으며 8위를 기록하는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세계 무역 순위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한국 홍콩 순이었다.
세계 경기 둔화로 올해 수출이 다소 부진했지만 10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는 등 경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선전했다. 올 1~9월 독일은 수출이 전년보다 5.1% 줄었고, 프랑스는 5.3%, 대만은 3.9% 각각 감소했다. 반면 한국은 1~10월 4553억달러어치를 수출해 지난해 같은 기간(4614억달러)보다 1.3% 줄어드는 데 그쳤다.
FTA 효과 톡톡 … 中企도 강해졌다
올해 전통적 효자 품목인 선박과 무선통신기기 수출은 지난해보다 각각 20% 이상 줄었지만 석유제품과 자동차가 선전하면서 충격을 완화했다. 또 중소기업이 많이 포진한 자동차 부품과 기계 부문이 약진해 중소기업의 역할이 커졌다는 평가다.
이 기간 자동차 부품 수출 비중은 4.5%로 무선통신기기(4.0%)를 넘어섰으며 일반기계 수출 비중은 8.8%로 자동차(8.5%)보다 높았다. 자동차 부품은 현대·기아차 해외 공장에 대한 납품이 늘고, 다국적 기업으로 판매망을 확대한 게 효과를 나타냈다는 평가다. 일반기계는 경쟁력 향상과 시장 다변화를 통해 수출이 지난해보다 6.7% 늘었다.
신승관 국제무역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전체 제조업에서 중소기업 생산 비중은 47.7%인 반면 기계와 자동차 부품을 포함한 기계장비 부문 생산 비중은 75.4%에 이른다”며 “납품 대기업의 국제적 지위 향상과 자체 경쟁력 확보 등의 노력으로 중소기업의 기여도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 미국 등 거대 경제권과의 FTA도 경제 침체의 충격을 완화했다. 미국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아세안 등 주요 FTA 발효국에 대한 수출이 증가했으며, EU의 경우 재정위기로 전체 수출은 줄었지만 관세 수혜 품목의 수출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10월 EFTA에 대한 수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31.8% 늘었으며 싱가포르는 11.1%, 아세안은 8.1%, 페루와 미국·칠레는 각각 7.5%와 5.8%, 3.1% 증가했다. 수출이 전기전자자동차석유화학 등 일부 품목과 특정 시장에 쏠린 점은 한계다. 중국을 비롯한 다른 제조업 국가들과의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불황으로 성장 유지에도 어려움이 예상돼서다.
장호근 무역협회 해외마케팅 지원본부장은 “신기술 지원과 신시장 정보 제공을 통해 중소기업의 수출 기여도를 높이고 무역분쟁 전문가를 양성해 보호무역 추세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