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등 선진국 경제는 당분간 연평균 2% 이상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투자자들은 뉴 노멀(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세계경제 질서)에 익숙해져야 한다.”

‘채권왕’으로 불리는 빌 그로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CIO·사진)는 4일(현지시간) 월간 투자전망 보고서에서 이같이 내다봤다.

‘뉴 노멀’은 금융위기 이후 정부·가계·기업의 광범위한 디레버리징(부채 축소)에 따라 나타나는 저성장·저소득·저수익률 등 3저 현상을 의미하는 용어로, 핌코의 최고경영자(CEO)인 모하메드 엘 에리안이 만들었다.

그로스는 선진국 경제가 4대 구조적 역풍을 맞아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다한 부채와 디레버리징, 세계화 효과 감소, 기술발달에 따른 일자리 감소, 인구 고령화 등이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의 부채가 너무 많다”며 “부채를 줄이기 위해 긴축정책을 시행하면 수년간 경제성장률이 낮은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 결과를 인용, “과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90%를 넘었을 때 연평균 성장률은 -1.8%였다”고 설명했다. 현재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00%다.

세계화에 따른 각성 효과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그로스는 지적했다. 그는 “1980년대 말 개방 이후 중국이 세계 경제 성장의 촉진제 역할을 했지만 최근 중국의 경제 성장세가 둔화돼 그 효과가 점차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감소와 고령화도 선진국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란 분석이다. 기술발달로 기계와 로봇이 인간 노동력을 대체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로스는 “최근 10년간은 기술발달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경제 성장을 부추겼으나 앞으로는 높은 실업률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령화는 경제 성장세를 조용히 죽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화는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소비를 위축시키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저출산과 수요 위축으로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일본이다. 그로스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55세 이상의 고령인구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며 “앞으로 수년간 여러 선진국이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로스는 “이 같은 구조적 역풍의 타격을 줄이는 방법은 있겠지만 완전히 해결할 만한 치료제는 현재로선 없다”며 “좌우파 어느 정부가 집권해도 구조적인 역풍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선진국들이 저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완화 등을 지속함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신흥국 경제는 선진국 경제보다 나을 것으로 봤다. 부채가 훨씬 적은 데다 젊은 인구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그로스는 이런 경제전망을 기반으로 앞으로 유망한 투자처로 비달러화 표시 신흥국 주식과 원유 금 등의 상품, 미국 물가연동국채 등을 꼽았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장기국채와 고수익채권 등에 대한 투자는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설리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