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2월5일 오전 7시18분

회사채 발행시장이 마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증권사들이 회사채 발행을 주관하는 과정에서 떠안은 회사채가 팔리지 않고 계속 쌓여 추가 인수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완만하게나마 오름세(채권가격 하락세)를 보이는 것도 회사채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일부 기업은 회사채 발행을 주관해줄 증권사를 찾지 못해 은행 대출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증권사 “인수 위험 더는 감당 못해”

한국경제신문 마켓인사이트(www.marketinsight.kr)가 5일 집계한 결과 지난달 수요예측을 통해 발행된 회사채는 3조8120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기관이 수요예측에 참여한 유효수요 금액은 2조3950억원으로 전체 발행금액의 62.8%에 그쳤다. 유효수요란 과도하게 높거나 낮은 금리로 참여한 물량을 뺀 금액이다. 발행금액 대비 유효수요 비중이 지난 9월 99%, 10월 86%에 이어 급속히 감소하는 추세다.

기관이 가져가지 않은 물량은 대부분 증권사들이 떠안는다. 이렇게 인수한 물량이 쌓임에 따라 상당수 증권사는 추가로 회사채를 인수할 여력이 없어졌다. 채권금리가 완만하게나마 상승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10월 말 연 2.77%에서 지난달 말 연 2.84%로 한 달간 0.07%포인트 상승했다. 금리가 상승하면 채권가격은 하락해 기존에 떠안은 회사채를 팔려면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내년 금리는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며 “증권사들이 위험을 안고 인수영업에 나서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업, 회사채 발행 규모 줄이기도

수요예측 제도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자산운용사 회사채 운용역은 “금리 하락기에 감춰져 있던 증권사의 과잉 인수 경쟁, 회사채 발행회사들의 지나친 금리 끌어내리기 압력, 투자자의 외면이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요예측 제도가 도입된 4월부터 10월까지 국고채 3년물 금리는 0.78%포인트 하락(채권가격은 상승)했다. 증권사들은 떠안은 회사채를 팔아 매매차익을 냈다. 하지만 금리가 하락을 멈추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일부 증권사들은 OCI와 GS건설 회사채 미매각 물량을 100억원당 수천만원에서 2억원 가까이 손실을 보면서 시장에 내다팔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기업 자금 조달에도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AA+의 초우량 신용등급을 갖고 있는 SK에너지는 6일 발행 예정인 회사채 규모를 당초 5000억원에서 3000억원으로 줄였다.

일부 기업들은 은행으로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한 시중은행 심사역은 “회사채로 자금을 조달하던 한 대형 건설사가 연말을 앞두고 수천억원의 대출을 요청했다”며 “부채비율을 낮추기 위해 대출을 상환하는 연말에 대규모 대출을 요청하는 것은 그만큼 다급하다는 신호”라고 말했다.

이태호/안대규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