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프리즘] 공정사회? 공감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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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
그리스에서 3대에 걸쳐 총리를 지낸 파판드레우가(家)가 또 한 번 뉴스메이커가 됐다.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확인된 것만도 한국 돈으로 8700억원대에 달한다는 뉴스로 말이다. 그리스인들 스스로가 자기 나라를 ‘4-4-2 국가’로 부르는 판이니, 새삼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 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축구의 팀 포메이션 얘기가 아니다. 국가에 내야 할 세금 가운데 40%를 탈루하는 대가로, 또 다른 40%는 세무공무원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나라 곳간에는 20%만 바치는 게 공식화돼 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도 원자바오 총리 일가가 권력을 기반으로 27억달러(약 3조원)의 재산을 긁어모았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이어 쓰촨성 부서기 등 고위 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와 부패 기사가 잇따르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신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가 소속한 제도혁명당은 멕시코의 사실상 단일 정당으로 정권을 독식해오면서, 절대권력을 무기로 한 고위 간부들의 비리와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국, 그리스, 멕시코의 공통점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뭘까. 정치·행정권력이 시장 메커니즘 위에 군림하고, 온갖 시시콜콜한 규제조항을 통해 공무원들의 오지랖을 최대한으로 넓혀 놨다는 점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패가 횡행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예컨대 중국의 덩치 큰 국영기업에는 최고경영자(CEO)의 책상 위에 어김없이 빨간 전화기가 놓여 있다.(대런 애쓰모글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당 간부가 해당 회사에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디에 투자해야 하며, 달성할 목표는 무엇인지를 수시로 지시하기 위해서다. 당 간부와 그 간부 임면권을 틀어쥔 권력집단, 국영기업 CEO 사이에 어떤 먹이사슬이 작동하고 있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멕시코 텔멕스그룹의 총수 카를로스 슬림을 세계 최고 부호자리에 앉게 해준 토양도 ‘큰 정부’다.(이코노미스트 10월13일자 커버스토리, ‘True Progressivism’) 멕시코 제도혁명당 정부는 1990년 국영 독점통신회사였던 텔멕스를 민영화한다며 슬림에게 넘겨줬다. 매입대금은 나중에 텔멕스로부터 배당금을 받아 갚도록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자기 돈 한푼 안 들이고 끌어안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슬림과 권력집단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고갔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공무원, 결정 말고 감시하라
공직자들이 시장경제에 대해 결정권을 거머쥐면 쥘수록, ‘끗발’에 따른 부작용 리스크는 커진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 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시장 개입을 강화하던 무렵, 경제전문가들이 ‘공정 사회’를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의 줄임말이라며 개탄한 이유다. 정치권은 한술 더 떠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며 시장 개입의 강도를 더한층 높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틈만 나면 ‘반칙’을 무릅쓰고서라도 잇속을 최대한 채우려는 시장경제의 이단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시장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이런 ‘시장의 미꾸라지’들을 엄벌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고 사전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를 강화하겠다는 건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일탈행위자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엄격한 감시와 일벌백계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를 ‘공감(공무원의 철저한 감시) 사회’로 부르면 어떨까. ‘공정’이 아니라 ‘공감’이 시장경제를 올바로 발전시킬 근본 해법이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
이 나라 사람들이 열광하는 축구의 팀 포메이션 얘기가 아니다. 국가에 내야 할 세금 가운데 40%를 탈루하는 대가로, 또 다른 40%는 세무공무원 호주머니에 넣어주고, 나라 곳간에는 20%만 바치는 게 공식화돼 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도 원자바오 총리 일가가 권력을 기반으로 27억달러(약 3조원)의 재산을 긁어모았다는 뉴욕타임스 보도에 이어 쓰촨성 부서기 등 고위 공직자들의 권력형 비리와 부패 기사가 잇따르고 있다. 멕시코에서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신임 대통령이 부정선거 논란에 휩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가 소속한 제도혁명당은 멕시코의 사실상 단일 정당으로 정권을 독식해오면서, 절대권력을 무기로 한 고위 간부들의 비리와 부패가 극에 달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중국, 그리스, 멕시코의 공통점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뭘까. 정치·행정권력이 시장 메커니즘 위에 군림하고, 온갖 시시콜콜한 규제조항을 통해 공무원들의 오지랖을 최대한으로 넓혀 놨다는 점이다. 이런 시스템에서 공직자들의 비리와 부패가 횡행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이다.
예컨대 중국의 덩치 큰 국영기업에는 최고경영자(CEO)의 책상 위에 어김없이 빨간 전화기가 놓여 있다.(대런 애쓰모글루,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당 간부가 해당 회사에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디에 투자해야 하며, 달성할 목표는 무엇인지를 수시로 지시하기 위해서다. 당 간부와 그 간부 임면권을 틀어쥔 권력집단, 국영기업 CEO 사이에 어떤 먹이사슬이 작동하고 있을지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멕시코 텔멕스그룹의 총수 카를로스 슬림을 세계 최고 부호자리에 앉게 해준 토양도 ‘큰 정부’다.(이코노미스트 10월13일자 커버스토리, ‘True Progressivism’) 멕시코 제도혁명당 정부는 1990년 국영 독점통신회사였던 텔멕스를 민영화한다며 슬림에게 넘겨줬다. 매입대금은 나중에 텔멕스로부터 배당금을 받아 갚도록 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자기 돈 한푼 안 들이고 끌어안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슬림과 권력집단 사이에 어떤 거래가 오고갔을지는 불문가지(不問可知)다.
공무원, 결정 말고 감시하라
공직자들이 시장경제에 대해 결정권을 거머쥐면 쥘수록, ‘끗발’에 따른 부작용 리스크는 커진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 사회’를 기치로 내걸고 시장 개입을 강화하던 무렵, 경제전문가들이 ‘공정 사회’를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의 줄임말이라며 개탄한 이유다. 정치권은 한술 더 떠 ‘경제 민주화’를 주창하며 시장 개입의 강도를 더한층 높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틈만 나면 ‘반칙’을 무릅쓰고서라도 잇속을 최대한 채우려는 시장경제의 이단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시장 생태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서도 이런 ‘시장의 미꾸라지’들을 엄벌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모두를 ‘잠재적 범법자’로 간주하고 사전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공무원이 정하는 사회’를 강화하겠다는 건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일탈행위자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엄격한 감시와 일벌백계다.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를 ‘공감(공무원의 철저한 감시) 사회’로 부르면 어떨까. ‘공정’이 아니라 ‘공감’이 시장경제를 올바로 발전시킬 근본 해법이다.
이학영 편집국 부국장 ha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