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금융사의 잇단 철수는 전 세계적인 디레버리징(부채감축) 흐름의 일환이지만 센 규제와 강성노조도 무시 못할 원인입니다.”

임석정 JP모간코리아 총괄대표(52·사진)는 서울 정동 JP모간 플라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세계경제 불황과 한국 금융시장의 매력도 하락을 고려할 때 시장이탈 움직임이 더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 대표는 “아시아 3위이던 한국 금융시장의 위상이 최근 5년 새 5위권으로 추락했다”며 “산업 전반을 점검하고 지원 방안을 모색할 때”라고 강조했다.

1991년 한국에 들어온 JP모간은 국내 진출(1967년) 1호인 체이스맨해튼은행을 합병한 최장수 외국 금융사다. 임 대표는 18년째 최고경영자로 장수하며 JP모간을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삼성카드가 금산법 위반에 따라 매각해야 했던 삼성에버랜드 보유지분 17%를 범 현대가인 KCC로 넘기는 창의적인 딜을 성사시키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투자은행(IB)가로 꼽힌다.

○“규제와 강성노조가 철수에 영향”

HSBC(소매부문) 골드만삭스자산운용 ING생명 등의 최근 잇따른 철수에 대해 임 대표는 “기본적으로 글로벌 본사의 자본확충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지만 한국시장 전반의 규제와 강성 노조가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예정된 시장선진화 조치들이 경제위기를 핑계로 무산되고 오히려 더 촘촘한 규제망이 짜여진 점이 부정적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시장활성화와 금융투자자 보호를 균형감 있게 양립시켜야 하는데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규제가 많은 나라의 대표격인 일본보다 더 엄격한 시장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민감한 노조문제도 거론했다. “주요국 중 한국의 노조문화가 가장 투쟁적”이라며 “금융업 노조가 아예 없는 미국 영국 등의 기업들은 강성노조를 무척 힘겨워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한국 금융시장의 매력이 추락하고 있다는 게 임 대표의 진단이다. 5년 전만 해도 일본 호주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중요한 시장이었지만 이제 중국 인도에 밀려 5위권으로 취급받는다고 전했다. “글로벌 금융사 입장에서는 비즈니스 여건이 팍팍해진 한국을 떠나 더 유망한 곳으로 이전을 검토하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또 “포화상태인 운용업이나 은행업 등에서 한국 비즈니스를 접는 외국사가 더 나올 수 있다”며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 산업 전반의 건강성을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제조업만큼 지원 ‘금융의 삼성전자’ 가능

임 대표는 금융업이 지탄의 대상으로까지 폄하되는 일각의 분위기가 있다며 존재가치를 적극 변호했다. “제조업만으로 안 된다는 게 영국이나 미국 사례에서 입증됐으며, 제조업 기반을 아세안 등에 뺏기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부가가치 높은 금융 등의 서비스업 육성은 필수”라는 설명이다. 그는 금융업은 제조업 일변도인 한국 경제의 위험을 상쇄하기 위한 필수 포트폴리오라고 주장했다.

또 ‘삼성전자 같은 금융사가 왜 없느냐’고 비판하기 전에 제조업만큼 지원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한국인의 우수한 DNA가 발휘돼 ‘금융의 삼성전자’도 탄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 대표는 “삼성전자가 갤럭시라는 상품으로 세계를 공략한다면 금융에서는 ‘뱅커’가 곧 상품”이라며 “젊은 세대들은 한국 뱅커들의 약점인 언어나 창의성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금융은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다만 몇 년 흉내내다 안 된다며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광엽/조진형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