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 25년, 日증권사 생존전략②] "예금을 투자로"…핵심 키워드는 '자산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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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권산업이 위기다.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풍파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국내 증권사들이 이제는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외부 충격에 따른 일시적 '쇼크'에는 강한 내성과 복원력을 자랑했지만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 하락)과 이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한국경제신문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 증권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불안한 경제 환경과 주식시장 정체 속에서도 살아남은 일본 증권사들에 주목했다.
부동산과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이에 따른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 일본 증권사들이 어떤 생존전략으로 살아 남았는지를 현지 취재를 통해 속속들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저축에서 투자로(貯蓄から投資へ)'
안전자산 선호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 증권사들이 되내이는 말이다. 이는 2003년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증권우대세제 등을 포함한 시정방침연설에서 나왔다.
일본 증권사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다른 증권사가 아닌 바로 은행이다. 고령화로 자산가들의 연령이 점차 높아지면서 안전자산 선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 대형 증권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자산관리'다. 일본 대형 증권사들이 은행을 이기기 위해서 택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고령화·저성장 시대, 투자신탁에 '올인'
주식시장 붕괴에 이어 1999년에 실시된 수수료 자율화와 온라인 증권사의 등장은 일본 증권업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점이 없는 온라인 증권사가 앞다퉈 수수료를 내리면서 증권회사의 평균 수수료율은 자유화 직전 0.42%에서 올해 3월 말 0.06%까지 떨어졌다.
일본 주요 증권사들은 주식 매매거래에서 더이상 강점을 내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산관리로 사업의 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가 타카오 일본증권경제연구소 주임연구원은 "1996년 연말부터 수수료가 내려갈 것이라는 얘기가 대장성(당시 일본 금융을 감독하던 기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며 "다이와, 노무라 등 대형사들은 수익원의 중심이 주식 매매에서 자산관리 쪽으로 이동하도록 업무구조를 바꿔갔다"고 말했다.
자산관리업의 중심은 투자신탁이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초고령화에 따라 매월 연금 형태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월 지급식 펀드는 업계 전체 잔고가 30조엔이 넘는다. 최근에는 상품의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엔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환율 헷지 펀드와 수익률에 따라 보수를 후불제로 받는 펀드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일본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수수료 자율화 이전 50%에 달하던 위탁수수료 수익 비중은 차츰 줄어들어 2004년 31%에서 2010년 19.2%까지 줄었다.
반면 펀드 판매 수수료 비중은 같은 기간 8%에서 17.8%로 두 배 이상 뛰었다. 펀드 판매 보수와 기업 인수·합병(M&A) 수수료, 자산관리 관련 수수료, 보험모집·론의 중개 수수료 등 기타 관련 수수료까지 합치면 자산관리 수수료 비중은 47.6%에 달한다.
◆시장 상황에 맞춘 다양한 투자신탁 상품 준비 필요
투자신탁이 인기라고 해도 투자 대상 상품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끝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제로금리가 시작된 2000년대에는 국내 금리보다 높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글로벌 소버린 투자신탁(선진국 국채 투자 펀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미국 등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 곡물·수자원 등에 투자하는 테마 펀드, 호주·뉴질랜드·브라질 등 고금리 해외 국채 펀드 등이 주목을 받았다.
일본 대형증권사 중 유일하게 은행과 연합하지 않고 독립을 지켜오고 있는 노무라증권의 생존전략도 여기에 맞춰졌다.
노무라증권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노무라자산운용(NAM)과 함께 통화선택형 펀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통화선택형 펀드는 해외 채권 수익에 환 헤지 이익까지 얻는 상품이다.
브라질 헤알화 코스의 경우 국채수익과 달러·헤알화 단기 금리차에서 생기는 수익(환 헤지 수익), 엔과 헤알화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이 합해진다.
야마모토 야스마사 노무라증권 상품기획부장(사진)은 "리먼 브러더스 쇼크 직후 하이일드 채권의 스프레드와 엔화가 외환 시장에서 크게 요동치는 시기를 포착해 기회를 잡은 상품"이라며 "당시 수익률에 대한 욕구와 맞물려 크게 성공한 경우"라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은 시황에 맞는 상품을 적시에 내놓기 위해서는 운용회사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도입 가능한 상품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라자산운용의 경우 연간 8000회가량 일본 국내 증권사들과 직접 접촉해 고객들의 고민을 들었다.
야마모토 부장은 "하나의 상품을 도입해 판매하는데 2~3개월이 걸린다"며 "항상 도입 가능한 상품을 여러개 준비해 둔 뒤 시장 환경에 따라 출시하는 전략이 먹혔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쉽게 하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뒤띔했다.
최근 노무라증권이 판매에 주력하는 상품은 현물을 매수하면서 콜옵션을 매도하는 '커버드콜 펀드'다. 변동성을 줄여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그는 "커버드콜 전략을 구사하는 '프리미엄 펀드시리즈'는 상품 설명이 어려워 초기에 잔고가 제대로 늘지 않았지만 고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판매 담당자에게 상품 구조를 철저히 교육시키고 고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 자료를 보강한 결과 시리즈 합계 잔고가 1조엔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은 시각적인 설명을 위해 지난 7월 영업직원 전원(약 8000명)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하기도 했다.
야마모토 부장은 "안전 자산 선호 현상과 고령화, 제로금리 속에서 자금을 안전하고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며 "컨설팅 영업 등 고객들의 수요나 고민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략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일본) = 한경닷컴 정인지·김효진 기자 injee@hankyung.com
후원 : 한국금융투자협회
외부 충격에 따른 일시적 '쇼크'에는 강한 내성과 복원력을 자랑했지만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 하락)과 이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라는 거대한 변화의 물줄기 앞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한국경제신문 온라인미디어 [한경닷컴]은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 증권산업의 현실을 진단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불안한 경제 환경과 주식시장 정체 속에서도 살아남은 일본 증권사들에 주목했다.
부동산과 IT(정보기술) 버블 붕괴, 이에 따른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 일본 증권사들이 어떤 생존전략으로 살아 남았는지를 현지 취재를 통해 속속들이 살펴봤다. <편집자 주>
'저축에서 투자로(貯蓄から投資へ)'
안전자산 선호 성향이 강한 일본에서 증권사들이 되내이는 말이다. 이는 2003년 고이즈미 당시 일본 총리가 자금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증권우대세제 등을 포함한 시정방침연설에서 나왔다.
일본 증권사들의 가장 큰 경쟁 상대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다른 증권사가 아닌 바로 은행이다. 고령화로 자산가들의 연령이 점차 높아지면서 안전자산 선호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때문에 일본 대형 증권사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자산관리'다. 일본 대형 증권사들이 은행을 이기기 위해서 택한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고령화·저성장 시대, 투자신탁에 '올인'
주식시장 붕괴에 이어 1999년에 실시된 수수료 자율화와 온라인 증권사의 등장은 일본 증권업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지점이 없는 온라인 증권사가 앞다퉈 수수료를 내리면서 증권회사의 평균 수수료율은 자유화 직전 0.42%에서 올해 3월 말 0.06%까지 떨어졌다.
일본 주요 증권사들은 주식 매매거래에서 더이상 강점을 내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산관리로 사업의 중심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가 타카오 일본증권경제연구소 주임연구원은 "1996년 연말부터 수수료가 내려갈 것이라는 얘기가 대장성(당시 일본 금융을 감독하던 기관)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며 "다이와, 노무라 등 대형사들은 수익원의 중심이 주식 매매에서 자산관리 쪽으로 이동하도록 업무구조를 바꿔갔다"고 말했다.
자산관리업의 중심은 투자신탁이다.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배분받을 수 있는 상품에 대한 요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초고령화에 따라 매월 연금 형태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월 지급식 펀드는 업계 전체 잔고가 30조엔이 넘는다. 최근에는 상품의 안정성이 부각되면서 엔 환율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환율 헷지 펀드와 수익률에 따라 보수를 후불제로 받는 펀드에 수요가 몰리고 있다.
일본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수수료 자율화 이전 50%에 달하던 위탁수수료 수익 비중은 차츰 줄어들어 2004년 31%에서 2010년 19.2%까지 줄었다.
반면 펀드 판매 수수료 비중은 같은 기간 8%에서 17.8%로 두 배 이상 뛰었다. 펀드 판매 보수와 기업 인수·합병(M&A) 수수료, 자산관리 관련 수수료, 보험모집·론의 중개 수수료 등 기타 관련 수수료까지 합치면 자산관리 수수료 비중은 47.6%에 달한다.
◆시장 상황에 맞춘 다양한 투자신탁 상품 준비 필요
투자신탁이 인기라고 해도 투자 대상 상품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끝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일본에서 제로금리가 시작된 2000년대에는 국내 금리보다 높으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하는 글로벌 소버린 투자신탁(선진국 국채 투자 펀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후에는 미국 등 국내외 부동산에 투자하는 리츠, 곡물·수자원 등에 투자하는 테마 펀드, 호주·뉴질랜드·브라질 등 고금리 해외 국채 펀드 등이 주목을 받았다.
일본 대형증권사 중 유일하게 은행과 연합하지 않고 독립을 지켜오고 있는 노무라증권의 생존전략도 여기에 맞춰졌다.
노무라증권은 2009년 금융위기 이후 노무라자산운용(NAM)과 함께 통화선택형 펀드 시장을 선점하는 데 성공했다. 통화선택형 펀드는 해외 채권 수익에 환 헤지 이익까지 얻는 상품이다.
브라질 헤알화 코스의 경우 국채수익과 달러·헤알화 단기 금리차에서 생기는 수익(환 헤지 수익), 엔과 헤알화 환율 변동에 따른 수익이 합해진다.
야마모토 야스마사 노무라증권 상품기획부장(사진)은 "리먼 브러더스 쇼크 직후 하이일드 채권의 스프레드와 엔화가 외환 시장에서 크게 요동치는 시기를 포착해 기회를 잡은 상품"이라며 "당시 수익률에 대한 욕구와 맞물려 크게 성공한 경우"라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은 시황에 맞는 상품을 적시에 내놓기 위해서는 운용회사와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 도입 가능한 상품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라자산운용의 경우 연간 8000회가량 일본 국내 증권사들과 직접 접촉해 고객들의 고민을 들었다.
야마모토 부장은 "하나의 상품을 도입해 판매하는데 2~3개월이 걸린다"며 "항상 도입 가능한 상품을 여러개 준비해 둔 뒤 시장 환경에 따라 출시하는 전략이 먹혔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을 쉽게 하는 것도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고 뒤띔했다.
최근 노무라증권이 판매에 주력하는 상품은 현물을 매수하면서 콜옵션을 매도하는 '커버드콜 펀드'다. 변동성을 줄여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의 입맛에 맞춘 것이다.
그는 "커버드콜 전략을 구사하는 '프리미엄 펀드시리즈'는 상품 설명이 어려워 초기에 잔고가 제대로 늘지 않았지만 고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판매 담당자에게 상품 구조를 철저히 교육시키고 고객이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 자료를 보강한 결과 시리즈 합계 잔고가 1조엔에 육박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라증권은 시각적인 설명을 위해 지난 7월 영업직원 전원(약 8000명)에게 태블릿 PC를 지급하기도 했다.
야마모토 부장은 "안전 자산 선호 현상과 고령화, 제로금리 속에서 자금을 안전하고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욕구가 강해지고 있다"며 "컨설팅 영업 등 고객들의 수요나 고민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전략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쿄(일본) = 한경닷컴 정인지·김효진 기자 injee@hankyung.com
후원 : 한국금융투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