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삼성전자를 (자신을 위협하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키웠다.” 제임스 올워스 미국 하버드경영대 연구원이 한 블로그에서 이렇게 분석했다고 해 화제인 모양이다. 애플의 아웃소싱이 결국 화를 불렀다는 얘기다. 따라서 애플이 아웃소싱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아예 미국에서 직접 제조하라는 게 이 연구원의 주장이다. 제조 가치를 뒤늦게나마 인식했다는 건 인정할 만하다.

문제는 경쟁기업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보는 글의 행간에 숨은 고정관념이다. 미국 기업은 언제나 ‘선도자’이고 미국 밖의 기업은 ‘모방자’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미국 밖에서는 맨날 미국 기업을 ‘역공학(reverse engineering)’이나 하며 베끼는 존재들인 것처럼. 이런 전제라면 모방자가 이기면 모두 잘못된 일이 되고 만다. 디자인이든 제조 노하우든 먼저 침 바른 게 임자라면 이 세상에 경쟁이라는 게 존재할 필요가 있나. ‘특허법’과 ‘반독점법’이 공존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영원한 선도자는 없다

선도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리라는 보장은 과거에도 없었다. ‘팔로어’가 ‘퍼스트 무버’를 제친 케이스는 수도 없다. 8㎜ 비디오카메라에서부터 일화용 기저귀, 전자레인지, 스프레드시트, VCR, 비디오게임 콘솔, 웹브라우저, 워드프로세싱, 워크스테이션 등이 죄다 그렇다. 심지어 애플 IBM의 PC만 해도 선도자는 MITS(Altair)였다. PC 운영체제(OS)를 장악한 마이크로소프트(MS) 앞에도 디지털리서치라는 선도자가 있었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지배기업은 팔로어로 성공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승리한 이 수많은 추격자들이 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인가. 오히려 이거야말로 경쟁의 묘미 아닌가.

더 파헤치면 누가 진짜 선도자인지조차 불분명한 게 진실이다. 당장 애플 아이폰만 해도 그렇다. PDA 업체 등 앞에 수많은 선도자가 스쳐갔다. 애플이 삼성을 키웠다는 논리면 IBM은 MS를, MS는 애플을 프랑켄슈타인으로 키웠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미국 기업이 언제나 선도자였던 것도 아니다. 미국의 ‘선발명주의’가 영국을 모방하기 위한 꼼수였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미국 밖에도 선도자들은 넘친다. 한국에도 있다. 2005년 애플 아이팟 출현 훨씬 이전인 1998년 디지털캐스트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MP3 플레이어인 MP-Man이 있었다. ‘I Love School’은 미국 페이스북보다 앞서 등장한 토종 SNS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한국 기업이 애플 페이스북 같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을 키웠다는 얘기가 된다.

미국 중심 발상이 문제

‘아메리칸 스탠더드’가 최고이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무조건 잘못됐다는건 그야말로 착각이다. 미국 기업이 미국 밖에서 고전하면 현지의 후진적 규제 탓으로 몰아붙이기 일쑤다. 그렇다면 최근 한국에서 미국 IT, 금융회사들이 철수하는 것도 다 규제 탓인가. 아무리 규제가 많아도 시장에서 이기고 있다면 철수할 까닭이 없다.

미국과 미국 기업이 직시할 게 있다. 혁신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전 세계 연구·개발(R&D)투자에서 미국 몫은 30%에 불과하다. 70%의 R&D가 미국 밖에서 일어난다. 특히 아시아(37%)는 미주(36%) 유럽(24%)을 이미 제쳤다. 아시아에서도 중국(14%)이 일본(11%)을 추월했고 한국(4%) 인도(3%)가 부상 중이다. 미국 밖에서는 ‘reverse engineering’만 하는 줄 아나? 웃기지 마라. 미국 밖에서 일어난 혁신이 미국으로 치고 들어가는 ‘역혁신(reverse innovation)’ 시대가 임박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