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냉키 파격 메시지에 술렁이는 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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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중앙은행 '물가안정' 넘어 '실업률 6.5%' 새 목표 제시
김중수 총재 "세계 중앙은행에 큰 영향" 평가
물가안정 전념한 한은 '성장 처방' 놓고 고민
김중수 총재 "세계 중앙은행에 큰 영향" 평가
물가안정 전념한 한은 '성장 처방' 놓고 고민
“벤 버냉키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장의 발언은 전 세계 통화정책 담당자에게 큰 영향을 줄 겁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지난 12일 무제한에 가까운 양적완화 정책을 발표한 직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들에게 한 얘기다. 김 총재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향후 한은의 역할에 변화가 생기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전문가들의 논의가 분분해지고 있다.
버냉키 의장은 FOMC 정례 회의 후 “물가상승률이 2.5%를 넘지 않는 한 실업률이 6.5% 밑으로 내려갈 때까지 제로금리 정책(연 0~0.25%)을 유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 총재가 시장에 던진 메시지로는 충격적이라는 반응이 많다. 향후 통화정책과 관련, 시장에 ‘암시’를 주는 ‘절제’된 표현이 아닌 구체적 실업률 목표치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한은 내부에서는 버냉키 발언이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1990년대 들어 전 세계 중앙은행은 물가안정목표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이번에 미 Fed가 그 범위를 넘어 성장과 관련된 실업률 지표를 들고 나왔다. 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성장’이란 새로운 목표를 시장에 분명히 던진 셈이다. 오정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Fed의 변화는 중앙은행의 목표 설정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은은 법적으로 성장을 목표로 한 통화정책을 구사할 수 없는 형편이다. 미 Fed는 ‘물가안정’과 ‘고용’이라는 목표를 법에 명시하고 있지만 한은은 물가안정에다 올해부터 포함된 금융안정만을 두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중앙은행 역할에 대한 큰 변화 중 하나”라며 “전 세계 중앙은행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이고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은이 명시적으로 ‘성장’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펼치기에는 미국과 한국이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은 이미 제로금리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여력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0.25%포인트씩 기준금리를 인하했으나, 현재 연 2.75%로 아직까지는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설 수 있다.
그럼에도 버냉키 의장의 발언이 한은에 의미있게 다가오는 또 다른 이유는 시장과 ‘소통’ 방식에 있다. 김 총재까지 “미 경제가 어떤 변수를 목표로,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명시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고 지적했다. Fed는 지난 9월 3차 양적완화(QE3) 발표 때만 해도 “2015년 중반까지 초저금리 기조를 유지한다”며 대략적인 시점만 밝혀오다 이번에 수치까지 제시하며 사전적 전제조건을 달았다.
중앙은행의 큰 형님 격인 Fed가 바꾼 만큼 상황이 비슷한 나라는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시장과의 소통에 대한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온 한은 입장에서 향후 시장에 보다 명확한 시그널을 주는 방식으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