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어떤 이에겐 이곳에서 저곳으로 장소를 옮길 수 있는 이동수단일 뿐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픈 도구일 수 있다. 전자의 사람들은 고장 없고 운전하기 편하며 가격이 싼 차를 최고로 여길 것이다. 후자는 길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차를 보고 얼마만큼 감탄하며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을지가 ‘좋은 차’의 기준일 것이다.

기자가 아는 몇몇 주변 사람들은 이들과 다르다. 한 지인은 1990년식 메르세데스 벤츠 E190을 소유하고 있다. 이 차의 정식 모델명은 W201 190E. E190이라는 이름만 보면 E클래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차는 벤츠의 컴팩트 세단 C클래스의 초기 모델이다. 지금도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벤츠의 클래식 명차로 분류된다.

하지만 20년이 넘은 이 차가 아무리 관리가 잘 돼 있다 해도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법. 지인은 이 차를 중고차로 구매한 뒤 직접 차량의 상태를 점검하고 부품을 공수해와 교체하는 등 자식처럼 돌봤다. 오래된 차라 정비매뉴얼을 구하기 어렵고 공식 서비스센터에 가도 손사래를 칠 정도로 관리하기 힘든 녀석이지만 동호회 사람들과 ‘재야 고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하나하나 상태를 개선했다.

그 결과 지금도 이 벤츠는 거뜬히 도로 위를 달리며 주인에게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다. 그는 “처음 인도받을 때 정말 상태가 좋지 않던 차를 하나하나 직접 만지는 과정에서 차를 깊이 이해하게 됐다”며 “차는 물론 이 차를 만든 20년 전의 기술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오래된 차라 해도 벤츠이니 가격이 비쌀 것 같다고? 틀렸다. 이 차의 현재 시세는 기아자동차의 경차 모닝보다 훨씬 싸다.

수입차만의 얘기는 아니다. 기자의 또 다른 지인은 2006년식 기아차 프라이드 검은색 세단을 몰고 있다. 그는 “이 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5000㎞마다 엔진오일을 고급제품으로 갈아주는 등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덕분에 현재 주행거리 8만㎞인 이 수동 세단은 신차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정숙성이 뛰어나다. 이대로라면 지인이 목표로 삼은 주행거리 20만㎞는 거뜬하게 달성할 것이다.

이 프라이드 오너는 덩치가 크다. 좀 더 큰 차로 바꿀 생각이 없는지 묻자 그는 “일단 수동기어의 맛이 일품이고 무엇보다 이놈과 정이 들어 다른 차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신차든 중고차든 자신의 취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재정능력을 고려해 이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차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거친 끝에 원하던 모델을 구했을 때의 기쁨은 시작일 뿐이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처음 시동을 걸고, 함께 여행을 다니고, 고장이 나면 낑낑대며 수리를 하고, 수리가 끝난 차를 타고 도로를 내달리며 쌓은 추억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그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함께하며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차. 무생물이지만 친구처럼 나와 교감할 수 있고 나와 잘 맞는 차. 지금도 어디선가 많은 이들이 부지런히 이런 차를 찾고 있을 것이다. 그 차가 어느 브랜드의 모델인지, 가격이 얼마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주행거리 17만㎞의 200만원짜리 1987년식 고물차라도 자격은 충분하다. 차와 그의 주인이 만들어가는 둘만의 소중한 추억은 값비싼 스포츠카와도 바꿀 수 없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