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북 경주시 용강동 발레오전장시스템스코리아 노조 사무실. 강기봉 사장(54)과 정홍섭 노조위원장(48)이 자동차 부품인 발전기 제어장치에 대한 품질개선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노조가 상급단체인 금속노조 세력을 업고 무려 111일간 강성 노사분규를 일으킨 3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노조 사무실 바로 옆에 사장실이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직원들은 올해 말 1인당 평균 1470만원의 상여금을 받는다. 회사 창립 후 14년 만에 최대 규모다.

정 위원장은 지난 16일 경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2012년도 경영설명회’에서 “노조가 회사를 지배하려 했다가 회사는 물론 조합원, 가족들에게까지 얼마나 큰 불행이 따르는지 우린 뼈저리게 경험했다”면서 “다시는 외부세력에 회사를 맡겨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최양식 경주시장과 김은호 경주상공회의소 회장 등 외부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주변에서는 이 행사가 금속노조를 자극할 수 있다며 극구 만류했지만 이 회사 노사는 ‘노사평화가 얼마나 값진가를 경주시민에게 알리겠다’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개 설명회 자리를 마련했다.


근로자 800여명인 회사의 올해 매출은 작년보다 300억원 증가한 5200억원으로 잠정추산된다. 당기순이익은 작년보다 19% 늘어난 370억원으로 창사이래 최대다. 강 사장은 이 같은 성과의 공을 노조원들에게 돌렸다. 2010년 6월 이 회사 조합원 절대 다수(97.5%)가 강경투쟁만 고집하던 이전 노조 집행부를 투표로 몰아내고 금속노조를 탈퇴하지 않았다면 이 같은 성과는 불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전 집행부가 회사를 ‘지배’하던 2008년과 2009년 이 회사는 19억원과 35억원 등 2년 연속 적자를 보였다.

2009년 2월 대표이사로 취임한 강 사장은 경영난 타개를 위해 경비원의 외주화에 나섰다가 극심한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자 이듬해 초 직장폐쇄에 들어가는 초강수를 뒀다. 주주인 프랑스계 발레오는 상급단체인 전국금속노조가 연대투쟁에 돌입하자 회사 청산결정까지 내렸다.

당시 금속노조 탈퇴를 주도했던 정 위원장은 “1년 내내 중앙-지부-지회의 3중 교섭과 파업을 되풀이하는 금속노조 산별교섭 때문에 회사는 강성 노조 눈치를 살펴야 했고, 이로 인해 생산성 향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구조였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새 집행부를 구성한 뒤 임금협상을 회사 측에 위임했다. 노조 집행부는 협상을 하지 않느라 남은 시간에 생산라인을 직접 돌며 불량률 줄이기와 산업재해 예방활동을 벌였다. 전 조합원들이 근무시작 전 체조를 하도록 유도하면서 2008년 연간 10여건에 달했던 근골격계질환자도 사라졌다. 이런 노력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져 2008년에 비해 올해 시간당 제품 생산량이 27%나 증가했다고 경영설명회 자료는 밝혔다. 근로시간도 17%나 단축되는 효과로 이어졌다.

덕분에 2010년 180억원의 흑자로 돌아선 데 이어 2011년 300억원 등 3년 연속 놀라운 성과를 냈다.

강 사장은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가 호황이기도 하지만 이런 경영성과는 순전히 노사화합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노사는 올해 해외시장 개척에도 나서 일본 도요타와 800억원 규모의 수출계약도 체결했다.

금속노조와 이전 집행부는 ‘해고자 복직, 강 사장 처벌’ 등을 요구하며 지금도 매주 서너 차례 회사 정문 등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주=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