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코 코리아, 김향수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 맞이 기념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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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이 글로벌 3대 반도체 강국과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50년 열정으로 만들어간 격동의 대서사시였다.
숨 막히는 시련과 도전 끝에 맨손으로 '모래알'을 '산업의 쌀'로 바꾼 기적이었다. 1992년에는 '미국 반도체의 20년 패권'과 '일본 반도체의 15년 아성'을 잠재웠으며 그 후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와 연계된 많은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고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써 이름을 알리는 데 초석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사업을 처음으로 창업한 故 우곡 김향수 명예회장(호 우곡•1912~2003)은 환갑을 목전에 둔 1968년에 아남산업을 통해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산업에 뛰어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개척자이다.
1912년 전남 강진 태생인 김 명예회장은 1939년 일만무역공사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광복 이후 56년에는 한국자전차공업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낙후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1967년 당시 56세였던 김 명예회장은 해외산업시찰을 통해 “미래지향적이며 고부가가치인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환갑을 목전에 둔 68년에 반도체 패키징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반도체라는 개념이 국내에는 생소하였고, 가족과 친지는 물론 전문가들조차 김 명예회장의 시도를 무모하다며 만류했다. 실제로 아남산업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후 2년 가까이 수주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70년 미국으로부터 첫 주문이 성사되었고, 이를 필두로 같은 해 12월 종업원 7명으로 미국에 메탈 캔 형태의 반도체를 수출하게 된다. 이 때 달성한 21만 달러의 수출은 아남의 첫 수출이자 한국 반도체의 첫 수출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당사는 2년 만에 종업원 1,000명 이상을 거느린 기업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해, 1979년에는 수출 1억불 돌파, 1983년에는 수출 100억불 돌파하며 반도체 신화를 이어나가게 된다.
아남의 성공은 이후 국내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고인은 초창기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국내 유수의 기업 총수들에게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역설하며, 이들의 반도체 사업 참여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고인의 노력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글로벌 3대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하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아남산업은 모기업인 아남그룹이 97년 IMF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맞게 되자, 창업 초창기부터 글로벌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해 온 미국 앰코테크놀로지에 의해 인수되었고, 1999년 앰코코리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김주호 대표이사는 “‘기업의 사명은 사회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 아래 인간존중과 신의를 경영의 제 1원칙으로 삼아온 선친의 경영철학이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큰 유산”이라고 언급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던 경영인으로의 고인의 모습을 추억했다. 또한, 당시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반도체의 가능성을 일찍이 꿰뚫어 본 선친의 통찰력과 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서도 과감히 도전한 기업가 정신에서 큰 영감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앰코코리아는 지난 17일 故 김향수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근간을 일구고 국가 경제 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고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사내 행사로 치러진 기념식에는 김주호 앰코코리아 사장 등 가족 및 친지를 비롯해 전ㆍ현직 임직원들이 참석했으며, 고인의 생전 모습과 일대기, 친필 휘호 등을 담은 화보집(畵報集) ‘내일의 길을 열다 : 집념과 인내의 반도체 인생’도 함께 발간되었다.
숨 막히는 시련과 도전 끝에 맨손으로 '모래알'을 '산업의 쌀'로 바꾼 기적이었다. 1992년에는 '미국 반도체의 20년 패권'과 '일본 반도체의 15년 아성'을 잠재웠으며 그 후 20여 년 동안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이러한 반도체 산업의 성장으로 우리나라 전자산업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와 연계된 많은 산업과 일자리를 만들고 세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을 IT강국으로써 이름을 알리는 데 초석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사업을 처음으로 창업한 故 우곡 김향수 명예회장(호 우곡•1912~2003)은 환갑을 목전에 둔 1968년에 아남산업을 통해 반도체 패키징 및 테스트 산업에 뛰어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개척자이다.
1912년 전남 강진 태생인 김 명예회장은 1939년 일만무역공사를 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광복 이후 56년에는 한국자전차공업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두게 되지만 낙후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1967년 당시 56세였던 김 명예회장은 해외산업시찰을 통해 “미래지향적이며 고부가가치인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환갑을 목전에 둔 68년에 반도체 패키징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반도체라는 개념이 국내에는 생소하였고, 가족과 친지는 물론 전문가들조차 김 명예회장의 시도를 무모하다며 만류했다. 실제로 아남산업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 후 2년 가까이 수주가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70년 미국으로부터 첫 주문이 성사되었고, 이를 필두로 같은 해 12월 종업원 7명으로 미국에 메탈 캔 형태의 반도체를 수출하게 된다. 이 때 달성한 21만 달러의 수출은 아남의 첫 수출이자 한국 반도체의 첫 수출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당사는 2년 만에 종업원 1,000명 이상을 거느린 기업으로 급성장하기 시작해, 1979년에는 수출 1억불 돌파, 1983년에는 수출 100억불 돌파하며 반도체 신화를 이어나가게 된다.
아남의 성공은 이후 국내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고인은 초창기부터 기회가 될 때마다 국내 유수의 기업 총수들에게 반도체 산업의 가능성을 역설하며, 이들의 반도체 사업 참여에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고인의 노력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글로벌 3대 반도체 강국으로 우뚝 서게 하는 숨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아남산업은 모기업인 아남그룹이 97년 IMF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맞게 되자, 창업 초창기부터 글로벌 마케팅과 세일즈를 담당해 온 미국 앰코테크놀로지에 의해 인수되었고, 1999년 앰코코리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된다.
김주호 대표이사는 “‘기업의 사명은 사회에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신념 아래 인간존중과 신의를 경영의 제 1원칙으로 삼아온 선친의 경영철학이야말로 오늘의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큰 유산”이라고 언급하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했던 경영인으로의 고인의 모습을 추억했다. 또한, 당시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던 반도체의 가능성을 일찍이 꿰뚫어 본 선친의 통찰력과 산업 기반이 갖춰지지 않은 가운데서도 과감히 도전한 기업가 정신에서 큰 영감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앰코코리아는 지난 17일 故 김향수 명예회장 탄생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근간을 일구고 국가 경제 발전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던 고인의 뜻을 기리고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사내 행사로 치러진 기념식에는 김주호 앰코코리아 사장 등 가족 및 친지를 비롯해 전ㆍ현직 임직원들이 참석했으며, 고인의 생전 모습과 일대기, 친필 휘호 등을 담은 화보집(畵報集) ‘내일의 길을 열다 : 집념과 인내의 반도체 인생’도 함께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