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미래학자인 레이먼드 커즈와일이 최근 구글에 합류했다. 엔지니어링 디렉터를 맡아 기계학습과 언어처리 분야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커즈와일은 14세에 음악용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읽어주는 기계를 만드는 등 오랫동안 기계학습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1999년 당시 10년 안에 ‘스스로 운전하는 자동차’와 ‘질문에 답하는 휴대폰’을 예견했을 때 모두가 비현실적이라고 했지만, 구글은 이를 현실로 만들었다”며 “구글과 컴퓨터과학 분야의 난제를 연구해 향후 10년 내 비현실적인 비전을 현실로 돌리는 일을 하게 돼 흥분된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교수 등 많은 학자들이 구글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커즈와일의 가세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구글이 인터넷 검색과 모바일 운영체제(OS) 등으로 정보기술(IT) 생태계를 장악해 ‘빅 브러더’라는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혁신 DNA’는 구글을 지탱하는 힘이다. 구글은 무인자동차, 구글글라스 등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했고, 지금도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커즈와일의 합류가 주목받는 건 구글에서 어떤 ‘작품’을 내놓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단기성과주의'에 갇힌 NHN

‘IT강국’이라는 대한민국 IT 대표기업들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기보다는 이용자 기반을 앞세워 비즈니스를 확장하려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예상 가능한 서비스와 비즈니스를 내놓기 바쁘다. ‘한국의 구글’이라는 NHN이 이런 상황이고, 다음 등 후발주자들은 NHN을 따라가기 벅차다. 몇 달 전 NHN 창업자 이해진 의장이 “초심을 잃었다”고 직원들을 질타한 것은 NHN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그런 사이 구글 애플 페이스북 트위터 등이 모바일 주도권을 쥐었고, NHN 출신이 만든 카카오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IT산업의 한 축인 통신회사들도 혁신보다는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이폰으로 스마트 혁명을 주도했던 애플조차 ‘창조 혁신 엔진’이 식어가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 팀 쿡 최고경영자(CEO)가 혁신보다는 ‘수성’에 주력하면서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전자에 1위 자리를 내주고 추격자로 전락했다. ‘IT산업의 주도권은 혁신에서 나온다’는 진리가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새 정부, IT 생태계 회복시켜야

새 정부 출범으로 ‘IT부처 정책지도’가 크게 바뀐다. IT산업 경쟁력 하락의 원인을 정보통신부 폐지로 인한 컨트롤 타워 부재에서 찾는 사람들이 많다. 여러 부처로 나뉜 정책을 통합해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가 유기적으로 작동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정부가 주도해 IT산업을 부흥하는 시대는 아니다. 기업들이 창의적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더 중요하다. 이를 통해 새로운 시장과 고용을 만들어가는 게 바람직하다.

불행하게도 선거 과정에서 IT산업의 미래를 종합적으로 그릴 수 있는 논의는 부족했다. IT 전담부처 신설이나 통신요금 인하 등 표를 얻기 위한 공약이 주를 이뤘다. 이런 수준의 논의로는 어떤 체제가 들어서더라도 과거와 같은 실패가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급격히 진화하는 IT패러다임에 맞춰 IT 생태계를 회복시키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창의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양준영 IT모바일부 차장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