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시장에도 대기업이 들어와야 합니다. 경쟁 없이 보호만 하면 결국 막걸리는 다른 주류에 밀립니다. 시장 자체를 키우는 게 우선입니다.”

배중호 국순당 사장(59·사진)은 19일 “막걸리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규제부터 줄여야 한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올해 막걸리 출하량은 36만6700㎘로 추정돼 6년 만에 처음으로 전년 대비 5%가량 줄었고, 수출액은 27.5% 급감했다. 현재 막걸리는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투자가 막혀 있다.

주류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도 막걸리를 제조하지만 전량 수출하고 있으며, 롯데주류와 CJ제일제당은 군소업체 제품의 유통만 지원하고 있다. 대기업이 들어오면 국순당 입장에선 불리할 텐데 배 사장이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1980년대 주류시장의 70%를 차지하던 막걸리는 현재 2% 수준까지 떨어졌다”며 “정부의 안락한 보호 속에 제대로 된 시장경쟁이 이뤄지지 않은 결과”라고 말했다. 배 사장은 “막걸리는 우수한 술이지만 병 디자인이나 품질관리 등은 1980년대 수준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며 “더 이상 막걸리업체 간 경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막걸리 대 맥주, 막걸리 대 와인의 경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 사장은 해외 와인시장을 예로 들었다. 대기업들은 1만원짜리 와인을 기계로 대량생산해 시장을 키웠고, 전통적인 소규모 와이너리들은 프리미엄급 와인을 생산하며 함께 성장했다는 것. 그는 “대기업은 표준화된 제품을 저렴하게 대량생산하고, 중소기업은 특화 제품을 만들면 전체 전통주 시장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전통주 시장을 키우기 위해 배 사장은 2008년부터 ‘전통주 복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옛날 막걸리인 이화주(梨花酒), 후추를 사용해 만든 자주(煮酒), 햅쌀로 빚어 추석에 마신다는 신도주(新稻酒), 소나무 가지로 빚은 송절주(松節酒) 등을 복원했고 곧 21번째 복원주를 내놓을 예정이다. 그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술은 점점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한 것으로 바뀌고 있다”며 “전통주도 와인처럼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익성을 생각하고 시작한 복원사업은 아니었지만 예상하지 못한 ‘소득’도 많았다. 직원들이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갖게 됐고, 어려운 복원사업을 꾸준히 진행하면서 새로운 기술도 터득하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축적한 우리 술 복원기술과 국순당의 발효기술을 바탕으로 2009년 ‘국순당 생막걸리’를 출시, 막걸리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순당은 우리술 전문주점 ‘우리술상’을 프랜차이즈로 전환하고, 최근 일본에 전통주점인 ‘고리마루’를 열기도 했다.

배 사장은 올해 초부터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있다. 그는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내년에는 리뉴얼한 백세주를 적극 홍보하고 저도주 캔막걸리인 ‘아이싱’의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변화를 통해 불황을 극복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