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올해의 책] 힘들었던 한 해…33권의 벗이 있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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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한 해였다. 선거 정국으로 인해 보수와 진보의 이념 갈등이 이어졌다. 때아닌 경제민주화 논쟁과 양극화 갈등은 피로감을 더했다. 이런 분위기는 서점가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사회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제언하는 엄중한 시각의 책들이 두드러졌다. ‘힐링’을 주제로 한 에세이류에 대한 높은 관심도 낯설지 않았다.
한국경제신문은 임진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책을 선정했다. 출판사 편집주간·편집장과 온·오프라인 서점 관계자, 한경 출판담당 기자들이 참여했다. 경제·경영, 인문·사회·과학, 문학, 자기계발·실용, 청소년·아동 5개 부문별로 최대 3권씩 추천받아 최소 3번 이상 거론된 책 33권을 골랐다. 경제·경영 분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인문·사회·과학 쪽의 《피로사회》가 가장 많은 추천을 받았다.
# 우리를 행동하게 하는 생각의 뿌리
경제·경영 부문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은 《생각에 관한 생각》이다.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원전’이라고 할 수 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인간의 판단과 선택’을 설명한 전망이론을 발표해 심리학자로는 처음으로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프린스턴대 명예교수가 10년 만에 펴낸 책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쏠려 있던 3월 말에 번역 출간됐는데 5만여권이 팔릴 정도로 관심을 모았다.
저자는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정신 작업을 본능적이며 자동적인 직관과 심사숙고해 처리하는 이성, 두 가지로 나눠 설명하면서 결함을 수반하는 ‘직관의 편향’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기존 경제학의 기본 사고틀을 뒤엎는다. 경제학에서 인간은 합리적인 경제주체, 즉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판단하고 행동하는 존재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돼 있다고 주장한다. 매순간 내리는 판단과 행동은 생각처럼 합리적이거나 이성적인 게 아니라 ‘직관의 회로’에 의해 조종당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판단에 영향을 주는 프레이밍 효과, 앵커 효과, 초점착각, 위험회피 등 그동안의 심리연구들을 광범위하게 다룬다. 직관적 사고 과정에서 비롯되는 오류를 막기 위한 방법도 제시한다. 먼저 인지적 지뢰밭에 있다는 신호를 인식하고 차분히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개인보다 힘을 갖춘 조직이 오류를 더 잘 피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대니얼 카너먼 지음, 이진원 옮김, 김영사, 556쪽, 2만2000원)
# 조직 역량을 배가시키는 리더십의 비밀
리더는 많지만 존경받는 리더는 드물다. 존경받는 리더라고 해도 팀과 조직의 지혜와 창의성을 끌어내 최고의 성과를 내는 리더는 더 찾기 힘들다. 어떤 리더는 조직의 성과를 몇 배로 불리는 반면, 다른 리더는 조직을 무너뜨리고 조직의 역량을 소모시킨다. 리더의 이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우리 기업들의 리더는 어느 쪽일까.
《멀티플라이어》는 참된 리더십에 대한 사회적 욕구와 맞물려 크게 주목받은 책이다. 미국 리더십 연구개발센터인 더 와이즈먼 그룹의 리즈 와이즈먼 회장과 파트너 그렉 맥커운은 글로벌 기업 35개사 150여명의 임원들을 20년간 연구한 결과 ‘멀티플라이어 효과’가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저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능력을 끌어올려 최고의 성과를 내는 ‘멀티플라이어’와 자신이 최고의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디미니셔’로 나눠 리더십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곱셈의 성과를 만드는 멀티플라이어가 되는 지름길도 제시한다.
저자들은 멀티플라이어는 재능이 풍부한 인재는 누구나 끌어들여 최대한 활용한다고 말한다. 일할 의욕을 갖게 하는 작업 환경을 만들어주고, 조직원 누구나 자신과 팀이 맡고 있는 일을 넘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토론의 사회자처럼 조직을 운영하며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심어준다고 조언한다. (리즈 와이즈먼·그렌 맥커운 지음, 최정인 옮김, 한국경제신문, 364쪽, 1만6000원)
# 행복은 도전과 경쟁을 통해 찾아가는 것
《러쉬!》는 자본주의 비판과 힐링 코드가 우세했던 올 출판계에 이단아 격인 책이다.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쓴 토드 부크홀츠가 “행복은 휴식과 여유가 아닌 도전과 경쟁을 통해 찾아가는 것”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경쟁은 인류를 비참의 늪으로 밀어넣는 족쇄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라는 저자의 주장은 생뚱맞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저자는 경제적 의사결정을 두뇌 수준에서 접근하려는 신경경제학등 다양한 분야의 사례를 통해 “경쟁 충동은 인간 고유의 본성”이라며 “성공과 행복의 기회는 이런 경쟁 본성을 인정할 때 찾아온다”고 역설한다. 자연으로 돌아가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며 월든숲으로 들어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향해 “당신은 틀렸다”고 한 저자의 말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토드 부크홀츠 지음, 장석훈 옮김, 청림출판, 364쪽, 1만5000원)
# 여행으로 만난 공정무역의 실상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는 공정무역의 실상을 추적한 자본주의 체험기다. 저자 코너 우드먼은 억대 연봉의 영국 런던 금융가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커피, 초콜릿, 휴대폰, 신발 등 일상에서 소비하는 상품의 생산 과정을 역추적해 자본주의 경제의 현실을 폭로하고,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위한 대안도 제시한다.
저자는 자본주의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의 위태로운 현실을 목격한다. 아이폰을 하루에 20만대씩 만들기 위해 18시간씩 일하는 중국 노동자들, 총알이 무서워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광산에서 광석을 캐는 콩고인들, 벼와 밀을 심고 싶어도 양귀비를 심을 수밖에 없는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의 생활상이 눈물겹다. 저자는 “눈앞의 이익을 좇아 제품의 단가를 낮추고, 품질과 타협하는 것은 생산 과정에 관련된 모두를 힘들게 할 뿐”이라며 “장바구니에 담는 상품에서 윤리적인 방식으로 생산된 제품의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코너 우드먼 지음, 홍선영 옮김, 갤리온, 285쪽, 1만4000원)
# 대기업 그룹, 장점은 키워야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한국 경제 진단과 조언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2005년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같이 펴낸 정승일, 이종태 씨를 포함한 세 사람의 대담 형식이다. 장 교수는 현대 경제의 발전은 복지국가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신자유주의 대안으로 복지국가를 내세운다. 그는 “복지의 개념부터 바꿔야 한다”며 ‘복지의 공동구매’ 개념을 제시한다. 복지는 부자에게서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 그 돈으로 상품을 공동구매하듯 가격은 낮추고 질은 올리는 혜택을 누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경제민주화와 관련한 의견도 제시한다. 그는 “규모의 경제가 중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서 대기업의 해악을 막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재벌의 장점은 키우고 문제점은 고치는 게 옳은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장하준·이종태·정승일 지음, 부키, 423쪽, 1만4900원)
# 이대로는 안 된다 … 경제를 쇄신하라
《문제는 경제다》는 진보 진영의 서민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의 한국 경제 진단과 전망이다. 4월 총선에 앞서 발간돼 주목받았다. 저자는 양극화 심화와 제조업 공동화, 골목상권 와해 등 한국 경제의 문제점을 짚으며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문한다. 한국 경제 구조의 다음 성장형 모델로 ‘올레길 경제모델’을 제시한다. 일부 기업과 고소득층에만 돈이 도는 폐쇄형 경제나 위에서 떨어지는 낙수효과의 한계를 벗어나 모든 참여자들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개방형 확산 경제, 밑바닥에서 뿜어져 올라오는 분수 효과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래 성장동력을 결정하는 딥 팩터를 바꾸기 위해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를 강화할 것을 역설한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환경에 발맞춰 자본 집약적 산업구조에서 첨단기술 집약적 산업구조로의 전환도 강조한다. (선대인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380쪽, 1만5000원)
# 日 요식업계 전설이 들려주는 장사 노하우
《장사의 신》은 일본 요식업계의 전설, 우노 다카시의 장사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자영업을 하고 있거나 준비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저자는 “장사에는 왕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장사를 ‘제대로’하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커피숍의 매니저로 시작해 200명이 넘는 자사 직원들을 성공한 이자카야(선술집) 사장으로 길러낸 그의 장사 비법은 남다른 면이 있다. 자금이 부족해 유동인구가 적은 곳에 가게를 열어야 했다면 멀리서도 찾아올 수밖에 없는 그곳만의 매력을 가꾸고, 요리를 못한다면 접객이 강한 메뉴를 만들고, 메뉴가 다양하지 않다면 한 번으로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주인장이 되는 길을 찾고, 큰 가게와 싸우지 말고 작은 가게만의 장점을 살리는 전략을 택하라는 뻔하지만 강력한 조언과 실천 방법이 실용적이다. (우노 다카시 지음, 김문정 옮김, 쌤앤파커스, 264쪽, 1만4000원)
# 시장을 지배하는 제품은 이것이 다르다
경영컨설턴트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가 펴낸 《디맨드》는 성공한 기업들의 수요 창출 스토리다. 빼어난 스토리텔링 솜씨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업과 제품의 비결을 들려준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나 기술 개발·마케팅 담당자들의 필독서로 꼽힌다. 저자는 수요 창출의 첫 번째 비결로 ‘매력’을 꼽는다. ‘좋은’ 제품이 ‘매력적인’ 제품은 아니라며 시장과 소비자의 감성 공간을 먼저 차지해 이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요즘 같은 ‘원클릭 시대’에는 소비자로 하여금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배경스토리의 창조’에도 주목한다. 제품의 성능보다 제품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요소들이 제품을 흥하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과학적 발견’이 수요를 일으키는 가장 큰 기회라는 점도 강조한다. 우연히 발견된 아이디어가 삶을 변화시킬 제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 외 지음, 유정식 옮김, 다산북스, 560쪽, 2만2000원)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