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책으로는 한병철 독일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 교수가 쓴 《피로사회》가 단연 두드러졌다. 4만부 넘게 팔렸다. 128쪽으로 얇기는 하지만 철학책이란 점에서 보면 이례적이다.
한 교수는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포착한다. 나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성과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는 것이다. 과거의 사회가 ‘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의 기반 위에 쌓아올린 부정의 사회라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정신이 강조되는 긍정의 사회다.
성과사회에서는 누구나 능력과 성공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든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사회는 피로감에 휩싸인다. 이 경쟁 대열에서 탈락하는 데 따른 좌절감은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성공을 향한 욕망의 증식과 개인의 자발적인 착취 양상을 특징으로 하는 성과사회에 맞서 무위와 휴식의 가치를 역설한다.
《3차 산업혁명》은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를 예측하는 제러미 리프킨의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1, 2차 산업혁명은 수명을 다했으며, 3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의 도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인터넷 기술과 재생에너지가 합쳐져 3차 산업혁명이 일어나는 과정을 설명한다. 저자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재생에너지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많은 소규모 기업들이 협업 관계를 맺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현재의 무한경쟁 구도는 협력적 네트워크에 자리를 내주고, 수직적 자본주의는 분산 자본주의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말한다. 또 3차 산업사회는 사회적 교류와 공동체에 대한 욕구를 끌어내면서 소유권보다 접근권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도 관심을 끌었다. ‘욕망’을 화두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들여다본다. 저자는 욕망을 억누르고 감춰야 할 대상이 아니라 건강하게 표출하고 이해해야 할 삶의 동반자로 인식한다. 욕망이 제때 적절히 분출되지 못하면 적절치 않은 시기에 비뚤어진 방식으로 터져나오게 마련이라며 마음속 욕망의 존재를 인정하는 일부터 하라고 역설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정의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의 인기를 확인해준 책이다. 샌델 교수는 무엇이든 가격이 매겨져 거래되는 풍토에 경종을 울린다.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가 존재하며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는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시장은 옳다’에 기초해 있다. 그러나 시장거래가 우리네 삶과 사고 방식, 도덕적 가치와 공동체적 가치를 변질시킬 경우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노동의 배신》은 워킹 푸어 체험기다. 《긍정의 배신》을 쓴 작가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3년 동안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도우미, 요양원 보조원, 대형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며 그들이 일을 해 받는 돈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알아봤다.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환경과 생활실태를 생생하게 조명한 점이 돋보인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버릴 수 없는 워킹 푸어의 역설적인 현실이 씁쓸하다.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와 맞물려 주목받았다.
《의자놀이》는 《도가니》를 쓴 작가 공지영의 쌍용자동차 사태 르포집. 2009년 근로자 2600여명의 해고로 시작된 쌍용차 파업 과정을 작가적 시선으로 담았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