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흔든 '그레이 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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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한국 흔든 '그레이 파워'
국가발전 정당한 몫 찾겠다
'투표권력' 적극 행사 나서
복지·재정정책의 최대변수
< gray : 5060세대 >
국가발전 정당한 몫 찾겠다
'투표권력' 적극 행사 나서
복지·재정정책의 최대변수
< gray : 5060세대 >
지난 11일 서울 명동. 수은주가 영하 10도로 떨어진 강추위 속에서 대한은퇴자협회 소속 100여명의 회원들이 길거리에서 투표독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었다. 18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는 이 협회는 50대 이상 은퇴자들의 권익 찾기를 위해 2002년 결성됐다. 하지만 이번 18대 대선에서 이 협회의 활동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여당은 ‘집토끼’라는 이유로, 야당은 ‘산토끼’라는 각각의 이유로 적극적인 손길을 내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거전문가들조차 예상치 못한 5060세대의 파괴력은 19일 투표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50대의 투표율은 89.9%, 60대 이상은 78.8%(방송사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추정)로 세대별 투표에서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면서 2030세대를 압도했다. 5060세대가 전체 투표에서 차지한 비중도 45.0%로 절반에 육박했다. 앞으로 이들의 표심을 거스를 경우 어떤 정당도 권력을 잡기 힘들어졌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주명룡 은퇴자협회 회장은 “인구 고령화로 하루 평균 2300명연간 84만명의 유권자가 50대로 편입되고 있다”며 “그동안 5060세대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해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침묵하던 이들이 투표장으로 몰려간 결정적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산업화의 주역인 5060세대들이 그동안 자신들의 땀으로 일군 국가 발전의 정당한 몫을 찾겠다는 의지의 표시”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자”는 구호를 내세워 반값 등록금을 관철시킨 것처럼 은퇴 후 안정된 삶을 국가와 사회로부터 보장받겠다는 의지를 확연히 드러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자녀들을 위해 미래국가 설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도 강하다는 게 5060세대의 특징이다.
일찌감치 고령화사회로 들어선 미국의 경우 이미 노년층의 파워가 정치권을 리드하고 있다. 미국 은퇴자협회(AARP)는 회원 3500만명이 넘는 미국 최대의 정치적 압력단체로 군림하고 있다. 이미 1965년에 65세 이상에게 무료 의료혜택을 주는 ‘메디케어’를 법제화했고 1970년대 말에는 기업 정년제를 폐지시켰다.
정부도 5060세대를 위한 일자리와 사회 참여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종합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주형환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경제 발전에 기여한 만큼 노년에 보상을 받게 해달라는 장년층의 정치적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며 “정부도 중장기 과제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