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왔지만 이전 집주인이 전혀 협조하지 않아 등기 이전이 안 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며칠이 지난 2008년 3월 초 청와대의 한 참모는 푸념삼아 이렇게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같은 달 15일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청와대에 들어온 지 열흘 넘게 지나도록 컴퓨터가 정상 작동하지 않았다. 아직도 야당과 같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 만든 각종 자료들을 제대로 넘겨받지 못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자료 축적 시스템인 ‘이지원(e知園)’을 인계 받았지만 ‘빈 깡통’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한 참모는 “기록물엔 하찮은 업무 매뉴얼을 적은 게 고작이었고, 핵심은 빠져 국정 현안 파악에 상당한 고충을 겪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하면서 회고록 집필을 위해 240만여건의 기록물을 경남 김해의 봉하마을 사저로 가져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5년마다 반복된 ‘정부 단절’

더군다나 청와대 직원들은 컴퓨터망 작동 방법도 전수받지 못했다. 새 시스템을 깔고 정상 가동하는 데 2주일가량 걸렸다. 국정의 심장부가 마비되다시피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지만, “문서를 제대로 건네줬다”는 노 전 대통령 참모들과 “알맹이가 빠졌다”는 이 대통령 참모들은 입씨름만 벌였다. 개선점 찾기는 뒷전이었다. 이명박 당선인 시절 인사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정원과 경찰로부터 존안(存案)자료 등 도움을 받지 못해 인터넷 검색과 언론사 인물정보를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다른 역대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1988년 초 노태우 당선인 시절 주요 결정 사항은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아야 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노 전 대통령 취임식 때 신임 대통령보다 상위 또는 동급 의전을 요구하는 바람에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93년 초 김영삼 당선인은 노태우 정부 청와대 사정비서관실이 고위 공직자 존안자료를 파기해 인사에 애를 먹었다. 1997년 말 15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정무분과 주요 직책을 맡았던 한 인사는 “정권 인수 과정에서 기존 정부와 차기 정부 측 모두 협조의지가 없었다. 현직 정부 인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맨땅에 헤딩하기’ 인수는 그만

정권 인수·인계가 잘 안 되는 이유는 여럿 있다. 우선 현직 대통령은 당선인과 그의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정권이 바뀐 뒤 보복을 두려워해 약점을 감추려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당선인은 임기 말 인기가 떨어진 현직 대통령과 거리를 둠으로써 정치적 차별성을 꾀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후임은 전임자를 부정하는 데 힘을 기울이곤 한 게 과거의 예다. 이로 인해 대통령과 당선인 간 반목과 갈등이 불거졌다.

그렇지만 이번엔 인수·인계 환경이 좋다. 이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은 같은 정당 소속이다. 현직 대통령 탈당 등 과거와 같은 극단적인 대결 구도가 없다. 이 대통령은 내각과 참모들에게 “정권 인수·인계 작업에 차질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인수위 활동은 차기 정부 5년 성패를 판가름한다. 더 이상 ‘맨땅에 헤딩하는’ 식의 인수·인계로 국정이 5년마다 단절되는 상황이 반복돼선 안 된다. 현·차기 정부 관계자들이 무릎을 맞대고 빈틈없는 정권 인수·인계 청사진을 만들어 이후 정권들이 모범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이번엔 정말 청와대 옛 주인이 새 주인으로부터 박수 받으며 떠나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싶다.

홍영식 정치부 차장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