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전경련 회장단 간담회는 새해 덕담 수준일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 달리 구체적이고 진솔한 대화가 오가는 자리가 됐다. 박 당선인은 대기업 총수들에게 기존의 잘못된 관행을 고칠 것을 주문했고, 총수들은 대형마트 영업규제와 순환출자금지 등 대기업 규제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박 당선인과 회장단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대기업이 투자 및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고 정부가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GS그룹 회장)은 인사말에서 “경쟁국들이 맹렬히 추격해 오는 가운데 우리는 사회적 활력이 떨어지면서 국민들의 자신감이 예전만 못하다”며 “선진국을 향한 마지막 고비를 넘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기업들은 해외시장에서 더 많은 돈을 벌어오고 투자를 늘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은 과감히 극복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를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 당선인이 인사말을 끝낸 뒤 “꼭 하고 싶은 분들은 말씀을 해달라”고 요청하자 회장들이 돌아가며 투자와 일자리 창출 방안,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 순환출자 규제 등 대선 공약, 기업 구조조정 등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17명의 회장단 가운데 12명이 발언할 정도로 논의가 활발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가장 먼저 발언에 나선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재계의 다짐과 기대를 전달했다. 정 회장은 “경제가 어려운 만큼 대기업이 적극적인 투자와 일자리 창출로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사회적 기업 육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 회장은 “경제가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서 새로운 투자 방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며 “사회적 기업을 키우는 등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투자활성화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골목상권 논란에 대한 의견을 전달했다. 신 회장은 “대형마트에 대한 월 2회 강제휴업으로 농어민과 중소기업의 피해가 우려된다”며 “대·중소기업 상생을 위해 다른 방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국내 기업 중 일시적 자금경색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곳도 있다”며 “이런 기업에 대해 금융을 지원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은 “문화복지를 강화하는 데 기업들이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 메세나(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 펀드의 매칭규모를 늘려야 한다”고 건의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박 당선인의 공약인 신규 순환출자 금지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박 회장은 “순환출자는 역기능이 있지만 기업 구조조정과 인수·합병(M&A) 촉진, 금융비용 절약 등의 순기능도 있다”며 “(공약을) 재고해달라”고 했다.

전경련이 입주한 서울 여의도 KT빌딩 14층은 오전 9시부터 검색대가 설치되고 탐지견이 동원되는 등 보안이 강화됐다. 일부 전경련 회장단은 1시간 전부터 와 박 당선인을 기다렸다.

간담회를 마치고 행사장을 빠져 나오는 회장들의 표정과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허창수 회장은 “간담회 분위기가 좋았고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얘기를 주로 했다”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도 “(분위기가) 좋았다”고 전했다. 정준양 포스코,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다른 회장님들이 얘기를 많이 했다”며 말을 아꼈다.

이건호/강영연/김대훈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