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애플이 끝이 아니었다
서울중앙지법이 삼성전자-애플 특허소송 판결을 처음 내놨을 때의 일이다. 국내 언론에서는 일제히 ‘삼성의 일방적 승리’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작 애플은 변호사를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특허침해를 잘 인정하지 않기로 유명한 국내 법원이다. 그런 곳에서 삼성이 애플 특허를 일부 침해했다는 판결을 이끌어낸 것만으로도 훌륭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애플은 자신들이 삼성의 표준특허를 침해했다는 법원 판결에 대해서도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애플은 판결이 나오기 무섭게 삼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다. 삼성의 특허침해소송이 유럽통신표준연구소(ETSI)가 제정한 표준특허의 이른바 ‘프랜드(FRAND,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특허법’이 아닌 ‘경쟁법(반독점법)’ 위반을 걸고 넘어진 것이다.

'경쟁법'이 더 무섭다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지금 삼성을 문제 삼는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삼성이 표준특허를 걸어 유럽에서 제기한 애플에 대한 판매금지소송이 경쟁법 위반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누가 EU당국을 꼬드겼는지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삼성은 애플에 대한 판매금지소송을 잇달아 취하하기 시작했다. 애플의 노림수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그동안 삼성이 직면한 리스크는 애플의 소송으로 인한 ‘애플 리스크’였다. 관심도 온통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북부지방법원과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판결에 쏠려 있었다. 그러는 사이 ‘경쟁법 리스크’가 또 다른 복병으로 등장했다.

그렇잖아도 EU로서는 상실감이 큰 상황이다. 유럽의 대표주자 핀란드 노키아, 스웨덴 에릭슨 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밀려나고 삼성과 애플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세계 통신표준을 이끌어왔던 유럽이 졸지에 컴퓨터의 미국과 전자의 아시아에 주도권을 내준 꼴이다. 만약 유럽이 경쟁법을 시간을 벌 수 있는 마지막 카드로까지 여긴다면 무시할 수 없는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구글·차이나·경제민주화…

또 다른 리스크는 구글발(發)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구글이 모토로라를 통해 삼성, 애플과 경쟁할 X폰을 준비한다고 보도했다. 올 것이 왔다. X폰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더 이상 삼성 등 대리인들을 통한 안드로이드 확장 전략에 의존하지 않겠다는 신호다. ‘구글 리스크’가 터진 것이다.

삼성-애플 양강 체제란 말이 나올 정도로 삼성의 영향력이 커진 상황이 구글로서도 달가울 리 없다. 외신들도 그렇게 전망한다. 이대로 가면 삼성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대폭 수정, 독자 스토어를 운영하는 아마존의 길을 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고. 어쩌면 애플이 삼성을 ‘프랑켄슈타인의 괴물’로 키웠다는 미국 내 분석을 정작 구글이 심각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구글은 이쯤에서 플랫폼 통제력을 확실히 다져놓을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렸을 수 있다.

[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애플이 끝이 아니었다
구글이 애플과 전격 타협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통해 삼성 등을 ‘왕따’시키는 시나리오다. 구글이든 애플이든 어차피 OS 자체로 돈을 버는 건 아니다. 무리해서까지 OS를 100% 장악해야 할 이유가 없다. 공존을 택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예상치 못한 리스크는 이것만이 아니다. 삼성이 앞만 보고 달렸더니 어느새 중국 기업들이 저가 스마트폰으로 맹렬히 추격 중이다. ‘차이나 리스크’도 변수다. 글로벌 시장에서 승자기업으로 올라선다는 게 이렇게도 험난하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에서 ‘경제민주화 리스크’까지 가세했다. 산 넘어 산이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