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 만에 재집권한 일본 자유민주당 정권이 극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3년 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인정했던 ‘고노(河野)담화’에 대해서는 수정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냈고, 총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집단적 자위권은 본격적인 검토대상에 올린다는 방침이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27일 기자회견에서 고노담화를 수정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은 채 “학자나 전문가의 연구가 이뤄지고 있고 그런 검토를 거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노담화 수정의 책임을 민간 쪽으로 슬쩍 떠넘기는 모양새다. “고노담화 수정을 위한 전문가회의를 만들겠다”고 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신임 총리의 총선 공약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일본 정부는 반면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인정하고 사죄한 ‘무라야마(村山)담화’에 대해서는 고노담화와 달리 수정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스가 장관은 지난 26일 “(무라야마담화를 인정했던) 역대 내각의 생각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무라야마담화는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가 1995년 종전 50주년을 맞아 “일본이 전쟁으로 국민을 존망의 위기에 몰아넣었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의해 여러 국가와 국민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반성한 것을 말한다.

총선 공약이었던 집단적 자위권은 도입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난 26일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 “1차 아베 내각(2006~2007년) 당시 설치했던 전문가 간담회에서 제시했던 집단자위권 유형을 한 번 더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동맹국이 타국으로부터 공격받을 때 직접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반격할 수 있는 권리다.

중장기 국방전략을 담은 방위계획도 자위대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로 했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총리가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방위상에게 2010년 각료회의에서 결정한 ‘방위대강(방위계획)’과 ‘중기 방위력 정비계획’을 수정·보완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중국의 군사력 팽창에 대응해 미국과의 공조를 견고히 하고, 자위대 역할을 강화하기 위한 의도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