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상 권리' 10명 중  9명 銃 가져…NRA 막강로비…번번이 규제 무산
미국 사회가 ‘총기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14일 미국 코네티컷주 뉴타운의 샌디훅초등학교에서 5~6세 어린이 20명(교사 등 포함 27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기난사 사건의 충격파가 미 대륙을 흔들고 있다. 유타주 솔트레이크시에 사는 11세 초등학생은 가방에 권총과 실탄을 넣어 등교하다 적발됐다. 이 학생은 “총기사건을 보고 나를 지키기 위해 총을 가져왔다”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총기를 규제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조 바이든 부통령에게 총기규제 태스크포스(TF)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TF는 자동소총과 같은 공격용 무기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총기규제 움직임이 이번에도 용두사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총기규제를 둘러싼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데다 미국은 헌법을 통해 총기휴대 권리를 분명히 보장하고 있어서다.

◆미국 역사는 ‘총의 역사’

“잘 규율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1792년 제정된 미국 수정헌법 2조에 명시된 총기 휴대권리 보장 내용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을 벌일 때 민간인의 역할이 컸다. 시민들은 집에 보관하고 있던 총으로 스스로 무장해 민병대를 결성, 영국군과 맞섰다. 1776년 영국에서 독립한 미국은 느슨하게 연결된 13개 주를 통합해 연방정부를 출범시키면서 탄생했다.

그 후 미국인은 식민지 지배 아래에서 탄압당했던 기억이 남아 있어 연방정부 군대가 자신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런 우려가 개인의 무기 휴대를 명시한 수정헌법 2조를 탄생시켰다. 서부개척 시대, 국가가 개인의 안전을 제대로 보살펴주지 않던 시절 총기는 원주민과 짐승들로부터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총기 소지가 미국적인 ‘문화’로 자리잡은 배경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총기규제를 강조하면서도 “미국은 세대를 내려오며 오랜 총기 소유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수정헌법 2조가 보장하는 개인의 무기 소유 권한을 믿는다”고 강조했을 정도다. 미국인에게 총기는 건국 이념인 자유와 개척정신의 상징물로 인식되고 있다.

◆10명 중 9명이 총기 보유

'헌법상 권리' 10명 중  9명 銃 가져…NRA 막강로비…번번이 규제 무산
로스앤젤레스(LA)시가 지난 26일 총기사고를 줄이기 위해 총기 자진반납 행사를 마련하자 공격용 반자동 소총을 포함해 하루 만에 2037정이 쏟아져 나왔다. LA시는 주민이 총을 가져오면 권총은 최고 100달러, 공격용 반자동 소총은 200달러짜리 상품권으로 바꿔줬다. 권총 22자루를 내놓고 1000달러어치 상품권을 받아간 사람도 있었다.

미국에서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총기는 2억8000만정(유엔) 또는 3억1000만정(미국총기협회·NRA)으로 추산된다. 미국 인구가 3억1384만명(2011년 말)이므로 10명 중 9~10명이 총을 갖고 있는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 자료를 토대로 2015년에는 총기사고 사망자가 3만3000명에 달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3만2000여명)를 추월할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 2만8393명이었던 총기 사망자 수는 지난해 3만1000명을 넘어섰다.

공격용 무기 소지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매번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공격용 총기 규제 법안이 나왔다. 하지만 입법 과정에서 총기 소유 옹호단체인 미국총기협회 등의 로비로 과거에 구입한 공격용 무기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게다가 시한부 조항마저 추가돼 2004년 시한이 오자 공화당 의원들이 주도해 법안을 폐기해 버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대규모 총기사건 때마다 규제여론 비등→총기 이익단체의 반대 로비→공화당과 민주당의 찬반 논쟁→유명무실한 대책 등으로 이어져온 사이클이 이번에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영국은 총기 규제에 성공

1996년 3월 영국 스코틀랜드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4~6세 어린이 16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후 전역에선 개인의 권총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는 캠페인이 벌어졌다. 영국 정부는 이듬해 개인의 권총 소유를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사냥용 엽총을 소유하려면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했다. 불법 총기가 적발될 경우 최고 징역 10년에 처하기로 했다. 그 결과 2002~2003년 5549건을 기록했던 권총 관련 범죄는 10년 만인 2011~2012년 3105건으로 44% 줄었다.

영국이 총기를 규제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반면 미국은 총기 소유 옹호론자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코네티컷주 총기난사 사건 직후 WP와 ABC방송이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총기규제 찬성 비율은 54%였다. 반대론자들은 총기 소유와 스스로를 지킬 권리는 건국 이래 지켜져 온 헌법적 권리여서 제한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들은 자동차 사고로 수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치지만 자동차 소유를 금하지 않듯이 총기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헌법상 권리' 10명 중  9명 銃 가져…NRA 막강로비…번번이 규제 무산

◆총기시장 규모 연간 40억달러

미국의 상업용 총기 시장 규모는 2011년 기준으로 연 40억달러에 이른다. 피지공화국의 국내총생산(GDP)을 웃돈다. 뿐만 아니다. 미국사격스포츠재단(NFFS)에 따르면 총기 및 탄약 제조업체, 그리고 유통업체가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내는 세금이 2009년 기준으로 43억달러에 달했다.

최근 5년간 총기 관련 산업의 세금은 48%가량 늘어났다. 가뜩이나 경기 불황으로 세수 부족에 시달리는 정부가 총기규제를 함부로 할 수 없는 대목이다. 총기 관련 산업 종사자 수도 18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총기 제조회사들은 총을 1자루 팔 때마다 1달러가량을 NRA에 기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NRA는 이 돈으로 연간 200만달러(공식금액) 이상의 로비자금을 정치권에 뿌리면서 총기 규제법안 제정에 대해 반대운동을 하고 있다.

워싱턴=장진모 특파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