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데 있어 먹고 사는 문제만큼 절실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이 점은 고상한 삶을 고집하는 예술가들도 피할 수 없다. 아무리 품격 높은 그림을 그린다 해도 팔리지 않으면 붓을 계속 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청나라 후기 강남(양쯔강 이남)지방에선 수묵화의 인기가 곤두박질치고 대신 초상화와 화훼 그림이 대세를 이뤘다. “초상화를 그리면 금을 만질 수 있고, 꽃을 그리면 은화를 받고 산수를 그리면 밥을 빌어야 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당연히 화가들은 더 이상 산수화를 그리려 하지 않았다.

허곡(虛谷·1824~1896)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성이 주(朱)씨였다는 이 화가는 태평천국의 난 때 군인으로 참전 후 난이 진압되자 승적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그는 무늬만 승려일 뿐 상하이의 속인들 틈바구니에 섞여 살며 그림으로 호구를 도모한 괴짜였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한 그곳에서 그림도 만만한 호구지책은 아니었다. 결국 그는 재물을 좇는 사람들의 욕망에 착안, 금은보화를 상징하는 금붕어(金魚) 그림에 ‘올인’한다. 결과는 대박. 그는 금붕어를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사하고 자신도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마도 금붕어가 가져다 준 행운이 아니었을까. 허곡의 그림이 새해에 독자제현의 가정에도 행운을 가져다주길 빌어본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