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동서 길이는 5400㎞로 북미 대륙보다 넓다. 광활한 땅은 철광석 석탄 석유 등 자원의 보고다. 연평균 6%대 성장률을 이어갈 수 있는 이유다. 경제가 활발해질수록 금융의 역할이 커진다. 기업금융뿐 아니다. 인구 2억4000만명으로 소매금융 수요가 급팽창하고 있다. 수익성이 좋은 이 시장은 금융의 격전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자카르타 중심부 수디르만 거리에는 씨티 HSBC 공상은행 등 외국계부터 만디리 BRI BCA 등 현지 은행에 이르기까지 100여개 금융회사가 영업 중이다.

○현지화로 승부하는 하나은행

아침마다 자카르타는 엄청난 교통 체증을 겪는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량 행렬도 장관이지만 차량과 차량 사이를 비집고 가는 오토바이의 굉음이 인상적이다. 대중교통이 부족해서다. 최창식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장은 최근 자카르타 곳곳에 거대한 하나은행 광고판을 내걸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현지인들에게 인지도를 높이려면 TV나 라디오가 아니라 거리 광고판이 더 효과적이라는 현지 직원들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하나은행은 현지 진출한 한국계 금융회사들에 ‘현지화 모델’로 평가받는다.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이 한국계 기업을 대상으로 영업하던 때인 2007년 하나은행이 빙탕마눈갈은행을 인수·합병(M&A)해 현지인 공략에 나섰다.

현지인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인 법인장은 현지인처럼 수염을 길렀다고 한다. 인수 당시 지점 수가 7개였지만 작년 말 30개로 늘었다. 공격적인 영업 덕분에 한 해 자산 증가율이 50%에 달했다. 하나은행에 입사 원서를 들고 찾아오는 청년들도 있다.

하나은행에 고객이 몰리는 이유를 최 법인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현지 은행은 느리다. 대출이 된다 안 된다 말도 잘 안 해주고, 될 것처럼 얘기한 뒤 못 한다고 말을 바꾸는 일도 종종 있다. 하나은행은 빠르고 신속하고 은행장 만나기가 쉽다. 서비스 정신만큼은 다른 모든 은행을 능가할 것이다.”

권세환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 부장은 “인도네시아 은행에서라면 두세 달 걸려야 은행 대출이 가능할지 얘기를 들을 수 있고, 그마저도 막판에 대출을 거절하거나 금리를 더 높이는 등 고객들의 불편이 많다”며 “한국계 은행들은 1주일이면 대출 가능 여부를 확실히 정해서 알려주고 한 달이면 대부분 대출이 실행되기 때문에 돈 급한 사람들의 수요가 있다”고 전했다.

하나은행 인도네시아 법인의 지난해 수익은 연 450만달러 정도다. 이곳 우리은행과 외환은행의 작년 당기순이익이 11월 말 기준 각각 1400만달러, 1200만달러 수준인 것과 비교해 아직 초라하다. 그러나 순이익의 성격을 비교하면 다르다. 하나은행은 전체 이익의 70%가량을 현지 고객에게서 낸다.

하나은행이 보여준 현지화 가능성은 다른 은행들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100여개 지점을 두고 있는 사우다라은행 지분 33% 매입 계약을 체결하고 합병 승인 절차를 밟고 있다. 신한은행도 뱅크메트로익스프레스 지분 40%를 매입하는 계약을 맺었다. 기업은행은 현지은행 BRI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직원을 파견했다. 한때 현지은행 BII를 샀다가 팔고 떠났던 국민은행도 다시 진출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온라인 주식거래 1위 업체는 한국계

해외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려면 리스크를 사전에 따져보는 치밀함도 있어야 하지만 도전정신도 필요하다. 인도네시아 주식투자자라면 누구나 아는 이트레이딩증권의 신재원 사장이 그런 예다.

동서증권 인도네시아 지점에서 근무하던 그는 외환위기 여파로 한국 본사가 문을 닫자 인도네시아에서 과감하게 베팅했다. 2002년 이트레이딩증권을 설립, 주식거래 자체가 생소하던 이 나라에 수익률 경진대회, 콜센터 서비스를 비롯해 각종 한국식 주식 마케팅 기법을 도입했다. 신 사장은 “한국경제TV를 모델로 해서 현지 증권방송도 만들 계획”이라며 작업 중인 스튜디오를 보여줬다.

개인투자자를 집중 공략한 덕분에 이 회사는 10년째 온라인 주식거래 부문 업계 1위다. 거래 계좌 수는 7만2000개에 이르고, 오프라인 외국계 업체들과 비교해도 업계 거래대금 기준 10위 안에 든다. ‘개미’들은 매매가 잦기 때문에 거래량만 보면 온·오프라인 통틀어 1위다.

키움증권과 우리투자증권(현지법인 우리코린도증권)도 잇달아 이곳에 진출했다. 윤석부 우리코린도증권 지사장은 “개인이 해외 주식을 쉽게 사고팔 수 있는 서비스를 이달 중순 첫선을 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카르타=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