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반기에 세출 예산의 72%를 몰아서 집행하겠다는 것은 경기 하락을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지만 그만큼 경기가 안 좋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부의 발표가 나오자마자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상반기 0%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기 집행’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가용자원 총동원해 경기 방어

정부는 지난해 9월만 해도 유럽발 재정위기로 인한 글로벌 경기 침체가 조금씩이나마 호전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유럽 재정위기의 해결 과정은 지지부진했고 미국과 신흥국의 경기 둔화 등이 더해지면서 상황이 더욱 악화했다.

그 결과 지난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전 분기 대비 0.1%에 그쳤고 지난해 성장률은 2.1% 선에 간신히 턱걸이할 정도로 낮아졌다. 2.1%는 우리 경제가 본격 성장하기 시작한 1963년 이후 역대 네 번째로 낮은 성장률이기도 하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런 성장률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1분기 수준과 엇비슷한 것으로 경기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올 상반기에도 0%대 성장이 우려될 정도로 경기가 바닥을 못 벗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올해 예상치인 3% 성장이라도 달성하려면 1분기에 총력을 다해 경기를 방어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체감 효과가 큰 사회간접자본(SOC) 분야 예산 중 66.1%인 28조8000억원을 올 1분기에 퍼붓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자리 확충 예산과 민생 지원 예산도 1분기 중 각각 42.0%, 42.9%를 쓰기로 했다. 일자리 예산은 2분기에도 32.5%를 투입, 상반기에만 올해 이 분야 예산의 74.5%를 배정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분기 전체 세출 예산의 절반 가까이를 투입한다는 것은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갖고 있는 화력(火力)을 집중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경제정책실장은 “당장 경기부양을 위해 마땅한 카드가 없는 정부로서는 예산 조기 집행만이 경기 하락을 막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라며 “한편으로는 상반기에 이만큼 재정을 몰아 쓴다는 것은 하반기 대규모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하도 병행해야”

전문가들은 정부의 재정 집행만으로 의도했던 결과를 충분히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금리 인하의 필요성도 제기하고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환율 하락과 경기 침체 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금리 인하 등의 조치를 병행해야 예산 조기 집행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해 7월과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하한 후 2개월째 동결했다. 하지만 연초 추가 인하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한은 안팎에서는 금융통화위원회 개최일인 오는 11일 한은이 올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면서 수출전선에 비상이 걸린 점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다.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국내외 금리차를 노리고 들어오는 자금은 투자를 줄여 환율 하락을 어느 정도 막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예산을 대거 조기 집행하는 것은 차기 정부가 경기에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자는 차원도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출범과 동시에 추경을 검토하더라도 사업계획 확정과 정기국회 승인 등 기본 절차를 밟는 데 걸리는 시간을 감안할 때 일러야 2분기에나 집행이 가능하다.

신 실장은 “환율 하락과 경기 침체 등에 대응하는 차원에서라도 금리 인하 등의 조치를 병행해야 예산 조기 집행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원기/이심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