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매주 주말만 되면 배낭을 메고 강원도로 길을 떠난다. 이미 늦가을부터 대관령엔 흰 눈이 덮여 있다. 저 눈은 4월이나 돼야 녹을 것이다. 버스로 지나다 보면 선자령 풍차길을 오르는 고원 능선에 풍력발전기가 흰 눈 위에 바람개비처럼 돌고 있다.

내가 주말마다 배낭을 메고 고향으로 가는 이유는 이렇다. 지난 3년 동안 고향 강릉에 ‘바우길’이란 이름의 걷는 길을 탐사했다. 18개 코스 340㎞의 결코 짧지 않은 길이다. 고향의 뜻있는 분들이 함께 참여해 매주 주말 걷는 길을 탐사했다. 덕분에 ‘강릉 바우길’이 제주올레와 지리산둘레길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트레일이 됐다. 걷는 것은 운동과 명상을 함께한다. 오래 걸으니 몸에도 좋고 깊은 생각과 함께 걸으니 마음에도 좋은 일이다.

이번 겨울엔 아직 큰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 지난해엔 한꺼번에 내린 눈이 지난 백년간 하루 최대 적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눈이 많이 쌓이면 인적이 끊길 것 같은데 오히려 눈 때문에 사람들이 더 붐비기도 한다. 바우길의 제1구간인 선자령 풍차길과 2구간 대관령 옛길엔 주말마다 눈길 트레킹을 즐기기 위해 수천 명의 도보여행자들이 몰려온다.

그곳은 바람도 많이 부는 곳이어서 동양최대의 풍력발전단지가 있다. 무조건 바람만 세게 분다고 해서 발전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대관령의 백두대간 능선처럼 연중 거의 어느 때나 초속 6~7m의 바람이 균일하게 불어주어야 풍력발전이 가능하다. 멀리서 바라보면 설산에 풍차가 돌아가는 모습이 여간 여유롭지 않다.

요즘 걷는 길 위에 나가보면 등산 복장이든 트레킹 복장이든 울긋불긋 여간 화려하지 않다. 이름이 좀 알려진 브랜드로 갖춰 입으면 옷값만 100만원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옷이 두툼해지는 가을과 겨울은 더욱 그렇다. 아웃도어 패션이라는 말을 등산이나 트레킹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도 일상용어처럼 사용할 정도이다. 지금 한국의 산과 길은 이런 옷들로 가득차 있다. 동네 뒷동산에 올라가면서 에베레스트 오를 때보다 더 높은 고가의 기능성 옷들과 장비를 챙긴다.

얼마 전 어떤 기사를 보니 우리나라 아웃도어 시장 규모가 4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인구 3억이 넘는 미국이 11조원 정도고, 인구 8200만명에 국민소득 4만달러가 넘는 독일도 우리보다 아래인 3조원 정도라고 한다. 소득 대비로 보든 인구 대비로 보든 이 정도 되면 이건 지나친 소비인 게 틀림없다. 한국의 3대 트레일 중 한 길을 낸 내가 보더라도 그렇다.

물론 요즘과 같은 한겨울에 눈길을 걷거나 눈 내린 설산을 오르자면 봄이나 여름 복장보다는 아무래도 돈이 더 들기 마련이다. 실제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가고 거기에 바람까지 심하게 불어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아래로 떨어지는 날 눈 쌓인 산길을 걸을 때는 두툼한 방한복에 하루 종일 눈길을 걸어도 젖지 않는 신발을 신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누구보다 많이 길 위에 나가 있는 바우길 탐사대원들의 복장을 보면 보통으로 차려 입은 회사원 출근복장 수준을 넘지 않는다. 이건 내가 내 자신에게도 말하고 바우길 사무국과 탐사대, 자원봉사자 분들에게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복장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그 속에 하나가 되는 산이 놀라게 입고 다니지는 말자. 또 함께 길을 걷는 사람이 내 옷을 보고 자기 옷을 다시 한 번 보게끔 입지 말자. 다시 말해 길을 내는 사람들이 길을 걸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복장으로 위화감을 느끼게 하면 안 된다. 이것은 길을 내는 사람들이나 걷는 사람들이나 서로 어울림의 배려이기도 하다.

어떤 분은 누가 새로운 운동으로 가벼운 산책을 권하자 걷는 것이 좋은 줄은 알지만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망설여진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 우스갯소리인 줄은 알지만 실제로 그렇게 대답했을지도 모른다. 새해는 아름다운 산길과 들길에 옷이 아니라 사람이 걷는 소박한 걸음들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순원 < 소설가 lsw8399@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