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로앵 DS4에게.

너와 함께 보낸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를 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2012년 12월24일. 넌 세수도 안한 꾀죄죄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지. 요즘 같은 혹한기에 세차를 했다간 온몸이 꽁꽁 얼어버린다는 게 너의 변명이었어. 그래, 추우면 그럴 수도 있다.

축제 분위기로 들떠있는 강남대로 한복판에서 우린 지저분한 몰골로 한 시간이나 갇혀 있었지. 앞뒤로 꽉 막힌 도로에서 슬슬 짜증이 날 무렵, 넌 내 기분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부지런히 시동을 꺼트리고 있었어. 자동으로 엔진이 멈췄다가 켜지는 ‘스톱 앤드 스타트’ 기능은 놀랍더군.

액셀러레이터를 밟아다 뗐다, 가다 서다를 반복할 때 무려 스무 번이나 작동하다니 말이야.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우리나라에선 연비 주행이 필수라며 넌 우쭐댔지. 디젤 엔진에 복합연비 17.6㎞/ℓ면 자랑할 만해. 하지만 시동이 켜질 때마다 온몸에 전해지는 ‘부르르’ 떠는 전율 때문에 난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너의 형편없는 엔터테인먼트 감각도 나를 열받게 했어. 어색한 침묵이 싫어서 “음악 좀 듣자”고 하자, 넌 라디오만 주구장창 틀었지. USB, 블루투스, CD플레이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었어.

서비스 센터에 전화하자 “내비게이션과 오디오 호환 문제로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할 예정이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답변이 돌아왔지. 국산 내비게이션을 넣으려던 시도는 좋은데 처음부터 제대로 했어야지. 수동기반 자동변속기인 MCP에 대해선 더 이상 뭐라고 안할게. 속도를 낼 때 누가 뒤에서 내 뒷덜미를 잡는 것 같은 불편한 느낌은 어쩔 수 없지만 고장이 나도 수리비가 덜 든다니 참아야지. 후진기어 넣을 때 기어를 잡고 위로 들어올려야 하는 건 미리 좀 말해주지 그랬니. 주차장에서 후진이 안 먹혀서 전면주차할 곳을 찾아 삼만리를 돈 것 같구나.

정작 내 화를 돋운 건 네가 분위기 파악 못하고 촐싹거릴 때였어. 우리 회사 앞 철길을 지날 땐 춤까지 추더라. 조금만 도로가 울퉁불퉁해도 신이 나서 들썩거리는 건 정말 못 참겠어. 노면을 섬세하게 읽는 능력이라고? 운전의 재미를 위해 서스펜션을 딱딱하게 세팅했다고 너는 말하지만, 평소엔 안락하고 편안한 승차감을 느끼게 해 줄 수는 없겠니.

마음에 든 점은 없냐고? 와치 스트랩 하바나 가죽 시트는 예술이더라. 하지만 귤 껍질처럼 울퉁불퉁한 직물 시트에서 매끈한 고급 가죽 시트로 페이스 오프하는 데 660만원이 더 들었다는 소릴 듣고는 절로 ‘허걱’ 소리가 나왔지. 탐나긴 하지만 1600㏄짜리 중소형차가 4345만원이라는 건 내겐 너무 부담스러워. DS3는 깜찍하고 색깔이 예쁘기라도 하지. 넌 덩치만 컸지, 비싸고 도통 매력을 못 느끼겠다. 최악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선물해 준 네게 이별을 고한다. 굿바이!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