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년기획] 금융시장 개방 앞둔 미얀마…韓 은행 '공격 진출'에 中·日 긴장
미얀마 경제수도 양곤의 아웅산 거리엔 온갖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다. 진열대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아웅산 수치 여사의 볼에 키스하는 장면을 담은 엽서가 가득하다. 지난해 11월 현직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미얀마 땅을 밟은 오바마 대통령은 미얀마 정부의 경제개방 강도에 따라 2년간 최대 1억7000만달러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년 전 베트남을 연상시키는 미얀마는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개방정책을 내놓고 있다. 작년 4월 고정 환율제를 폐지하고 관리변동 환율제를 도입한 것도 금융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자본축적이 태부족한 상황에서 도로, 발전소, 댐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선 외국 자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서다. 일본, 중국 은행들은 물론 한국 은행들이 사무소를 내고 치열한 물밑 경쟁을 벌이는 것도 미얀마의 투자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금융개방이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해서다.

○외국 은행들 미얀마서 물밑 경쟁

미얀마는 현재 외국 은행들의 영업을 금지하고 있다. 미얀마 정부 측은 올해 4월께 현지 은행과 합작회사 형태의 영업 인가를 내준 뒤, 2016년 이후 외국 은행의 단독지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큰 틀만 예고해 둔 상태다. 킨 소 오 미얀마 중앙은행 부국장은 “올초에 합작회사를 통한 영업 승인을 내줄 계획”이라며 “금융관련 규제를 계속해서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아직은 현지 영업이 불가능하지만 미얀마에는 19개의 외국 은행이 있다. 그중 12곳이 미얀마 개방이 시작된 2010년 이전에 사무소를 설립했다.

성장성 면에서 미얀마는 ‘제2의 중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젊은 인력이 많고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이제 막 시장이 열렸기 때문에 도로 항만 통신 등 인프라 개발 수요가 무궁무진하다. 일본의 마루베니·미쓰비시·스미토모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지난해 7월 미얀마 최대 도시이자 경제 중심지인 양곤 인근에 경제특구를 공동 개발하기로 미얀마 정부와 합의했다.

은행업 인가를 받지 못했지만 각종 인프라 개발에 필요한 투자금융 분야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외국 은행들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말 산업, 우리, 하나은행이 사무소를 개설했다. 신한, 국민, 기업은행도 사무소 개설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몰려오는 후발 주자 한국계 은행

우리나라 은행들이 공격적으로 미얀마 시장을 파고들자 미리 진출해 있던 일본, 중국, 태국 은행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1년 동안 한 국가의 은행들이 3개 이상 사무소 개설을 허가받은 경우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미얀마에 진출해 있는 한 일본계 은행 관계자는 “일본 은행들의 경우 1996~1998년부터 미얀마 정부가 영업 허가를 해 줄 것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국 은행들이 최근 미얀마 공무원들과 적극적인 네트워크를 쌓으면서 선점효과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후발주자인 국내 은행들의 가장 큰 숙제는 유력 현지 은행과 합작은행 설립을 위한 협약을 맺어야 하는 점이다. 칸보자은행, CB뱅크와 같은 선두 현지 민간은행들은 이미 다른 외국 은행과 합작사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어놨다.

미얀마 은행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얻기조차 여의치 않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미얀마 현지 은행에 지배구조, 재무상태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니 종이 한 장짜리 은행 소개서를 받은 적이 있었다”고 전했다.

미얀마의 금융당국 공무원들이 양곤에서 320㎞가량 떨어진 행정수도 네피도에 있는 것도 불편한 점이다. 열악한 도로사정으로 버스를 타고 가도 다섯 시간가량 걸린다. 미얀마 금융당국의 업무 진행상황과 정책방향을 알기 위해선 1주일에 한 번 이상 네피도로 출장을 떠날 수밖에 없다.

○미얀마 금융개방 속도 낼 듯

미얀마 정부는 금융시장 활성화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이다. 지난해 10월 비자카드, 마스터카드, 일본 JCB, 중국 CUP 등 4개 카드사를 미얀마의 전자결제시스템인 MPU(Myanmar Payment Union) 네트워크와 연결시켜 사용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신용카드 활성화에 맞춰 미국과 미얀마 간 달러 송금 거래 길도 열렸다. 미국이 1991년부터 미얀마에 대한 경제 제재조치를 시행함에 따라 미얀마는 국제사회 어느 곳과도 달러 거래를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 방문 이후 금융거래 협력이 가속화하면서 미국 은행인 웨스턴유니언사가 지난해 11월 미얀마 현지 은행인 미얀마 오리엔탈 뱅크와 금융협약을 맺고 달러 송금을 할 수 있게 됐다. 텟 코코 묘 칸보자은행 마케팅담당 국장은 “이번 조치로 미얀마에 진출해 있는 해외 기업뿐 아니라 앞으로 활동하게 될 외국 은행들도 숨통이 트이게 됐다”고 말했다.

미얀마의 금융 인프라는 부실하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도 미얀마 전국에 걸쳐 90여개에 불과하다. 작년 기준 미얀마 사람들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850달러 정도다. 저축할 여력이 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미얀마 현지 은행들이 한국계 은행들의 소매금융 역량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킨 소 오 부국장은 “미얀마 은행들은 한국 금융사의 개인 고객 관리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한다”며 “우리, 신한, 국민은행 등의 고객관리 서비스를 배워 미얀마에 잠재돼 있는 개인고객군을 발굴하고 싶다”고 말했다.

양곤=박신영 기 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