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전고투 끝에 월 1천만 강연수익 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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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속 차별강연 통해 스타 명강사 오기자씨(굿커뮤니케이션 대표)
교육컨설팅회사인 굿커뮤니케이션의 오기자 대표(44)는 자신을 “힐링소통 전문가”라고 소개한다. 교육활동이 너무 즐거워 자신의 소명이라고 할 만큼 강연하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재능있는 사람은 노력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 그리고 노력하는 사람은 재미로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오 대표는 강연하는 재미에 빠져 전국을 다니며 강연에 몰두한다.
강연대상도 창업강의를 비롯해 공무원대상 강의, 기업대상 강의 등 다양하다. 강의 주제는 항상 커뮤니케이션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오 대표는 공주영상대학에서 겸임교수로 활동하는 등 24시간이 모자랄만큼 바쁜 인생을 살고 있다.
이처럼 성공한 강사가 된 오 대표는 그러나 자신이 강의를 통해 소명의식을 느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준비되지 않은 인생의 도전에서 여러 차례 쓴 맛을 보기도 했지만 항상 사람에게서 힘을 얻고 사람을 통해 성공의 길을 찾아냈다.
삼성화재 10년 생활 그만두고 기획사 실장이 되기까지
오 대표는 198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살의 나이에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한다. 이후 삼성화재로 발령받아 회사생활을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삼성에 취직해 커리어를 쌓아 주변사람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오 대표는 남다른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다.
“교육과 매출 업무를 담당했었는데, 매출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홍보같은 업무를 하고 싶었는데 대기업에서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가 없었어요.”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오 대표는 IMF 이후인 1998년 10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다.
사진에 취미가 있던 오 대표는 포토그래퍼가 되고 싶었던 꿈이 있었지만 알고 지내던 행사 기획사 대표 두 사람의 권유로 행사기획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번도 사업을 해보지 않은 오 대표는 긍정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자세로 회사를 그만둔지 3개월도 되지 않아 사업자 등록을 냈다. 사업을 권유한 기획사 대표들의 후원 약속에 자신감도 있었다. 삼성화재 손해사정서비스의 창립 1주년 행사를 시작으로 사업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오 대표의 행사기획 사업은 일견 승승장구하는 듯 했다. 하지만 수익성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 때는 마진을 남기는 일이 속보인다고 생각해서 잘 못했다”고 말했다. 사업을 권한 두 기획사 대표들이 밀어주는 행사를 하고 나면 행사 금액은 컸지만 남는 돈이 몇 만원에 불과하기도 했다.
오 대표는 이때 “내가 경험이 되지 않고는 계속 적자로 갈 수 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이윤을 낼 수 있는 구조에 대한 경험이 필요했다”는 생각을 했다.
야심찬 첫 사업에서 좌절을 맛봤지만 이 사업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던 오 대표에게 행운이 따랐다.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을 따기 위해 YMCA 교육과정을 이수하던 중 함께 일을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대전YMCA의 청소년사업부 부장으로 2008년까지 일했다.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기 위해 부단히 자기개발을 하던 와중에 생긴 인연은 오 대표의 인생을 크게 바꿔놓는다. 2000년부터 시작한 YMCA 생활을 오 대표는 가장 즐거웠던 시기라고 말했다.
2009년에는 한국 10대 기획사 중 한곳인 시룩스커뮤니케니션즈의 실장으로 자리를 옮겨 정부행사를 기획하게 된다. 평생을 살던 대전을 떠나 서울로 옮겨온 것도 이 때가 처음이다.
하지만 정부행사 기획은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 대표는 독립을 결심하고 2011년 회사를 떠나 자신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다.
배경없는 도전…사람에게 힘 얻어 명강사로 재기
“삼성에서 그만둘 때도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서 그만뒀었구요. 지난 회사를 그만둔 것도 그런 이유였죠. 긍정마인드가 재산이었던 제가 활기를 잃는 모습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어요.”
오 대표는 자신의 지향점을 교육으로 잡았다. 이미 대학강의를 10년 이상 해왔다.
YMCA에 있을 때 2001년 우송정보대학에서 레크리에이션 지도법을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건양대학교, 배제대학교, 대전대학교 등에서 레크리에이션과 이벤트 홍보마케팅, 관광비즈니스 관련 강의를 해왔기 때문에 강의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도전은 녹록치 않았다. 평생을 대전에서 살다 서올에 올라온지 3년여밖에 되지 않아 교육관계자를 알 수 있는 네트워크가 없었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새로운 꿈을 꾸고자 했지만 이 새로운 꿈이 허사가 될 위기에서 오 대표는 몇 개월간 고민에 빠졌다. “내 생애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다”라고 오 대표는 회상했다.
새로운 도전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자신감이 있었던 오 대표는 더 큰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하지만 이전 강의를 통해 알게 된 지인을 만나 극적인 실마리를 찾게 된다.
“차별화된 강의 콘텐츠를 찾는 것이 관건이라는 조언을 얻었습니다. 또 소액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커뮤니티들을 찾아 강사들과 네트워크를 얻는 것이 방법이라는 것도 알게 됐죠.”
강사들 사이에서 이름이 나면서 반년이 넘게 고전하던 오 대표도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대학강의와 레크리에이션 등을 통해 실력은 인정받은 터였다. 지난해 하반기 부터는 강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 40시간을 연달아 강의하기도 했지만 힘든 기색을 내비친 적이 없어 강연을 듣는 교육생들의 감탄을 사기도 했다. 창업강의가 물밀 듯이 들어와 지난해에만 300시간이 넘는 창업강의에 나서기도 했단다.
“항상 감성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한다”는 오 대표의 강의는 큰 인기를 끌어 강연만으로 월수입 1000만원을 넘어섰다.
강연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살겠다는 목표를 이룬 오 대표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강의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아시아의 오프라 윈프리라고 말을 한다.
오 대표는 “오프라 윈프리는 자신의 브랜드를 통해서 나눔을 실천한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나도 그런 것을 하고 싶다. 내가 브랜드가 돼서 ‘여기를 도와주자. 이런 일을 해보자’ 했을 때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경닷컴 이창호기자 newsinf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