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피해농가 고교생, 건대 수의과대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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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전국을 휩쓴 ‘구제역 파동’으로 기르던 모든 가축을 살처분한 농가의 고교생이 건국대 수의과대학에 합격, ‘방역 전문가’로서의 꿈을 키우게 됐다.
충남 청양군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청양정산고 3학년 이건학 군(19·사진)은 최근 건국대 수의과대학 수의예과 최종 합격을 통보받았다. 이군의 합격 소식을 들은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 입에선 “해낼 줄 알았다”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군이 수의과대학에 진학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이군의 꿈은 원래 ‘내과 의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투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고1이던 2010년 5월 충남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이군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았다. 당시 청양군 축산기술연구소에서 처음 발견된 구제역은 1주일 만에 최초 발생지로부터 2㎞ 거리에 있던 이군 집 축사로 확산됐다. 이군 부모는 자식처럼 키워온 소 60여마리를 산 채로 구덩이에 몰아넣고 생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역 당국은 가축 인공수정사인 이군 아버지가 문제의 연구소와 인근 축산 농가들을 자주 오가며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으로 의심했다. 곧이어 이군 아버지가 인공수정 시술을 해준 농가 14곳의 소 300여마리가 줄줄이 살처분됐다.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어버린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이군 아버지에게 비난 화살을 쏟아부었다. 이 일로 아버지는 스트레스로 쓰러져 자리에 누웠다. 다른 가족들도 이웃 시선을 피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이후 이군 아버지가 연구소에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제역 전파’ 의심에서 벗어났지만, 이군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방역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구제역이 발병하면 가축만 잃는 게 아니에요. 피해를 본 농장들은 3년 이상 지나야 원상복구가 되기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도축되는 가축의 울부짖음과 그걸 지켜보는 농민들이 훔치는 눈물 보신 적 있나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노력에 저도 동참하고 싶어요.”
이군은 “청양에는 소 전문수의사가 3명인데 2명은 곧 은퇴할 분들이라 젊은 수의사가 필요하다”며 “졸업 후 고향에 내려가 지역 농민들의 동물들을 돌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충남 청양군에서 부모와 함께 사는 청양정산고 3학년 이건학 군(19·사진)은 최근 건국대 수의과대학 수의예과 최종 합격을 통보받았다. 이군의 합격 소식을 들은 학교 선생님들과 친구들 입에선 “해낼 줄 알았다”며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이군이 수의과대학에 진학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이군의 꿈은 원래 ‘내과 의사’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유방암에 걸린 어머니가 항암치료를 받으며 힘겨운 투병을 하는 모습을 보고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돌보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고1이던 2010년 5월 충남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이군의 인생 항로를 바꿔놓았다. 당시 청양군 축산기술연구소에서 처음 발견된 구제역은 1주일 만에 최초 발생지로부터 2㎞ 거리에 있던 이군 집 축사로 확산됐다. 이군 부모는 자식처럼 키워온 소 60여마리를 산 채로 구덩이에 몰아넣고 생매장할 수밖에 없었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방역 당국은 가축 인공수정사인 이군 아버지가 문제의 연구소와 인근 축산 농가들을 자주 오가며 바이러스를 옮겼을 것으로 의심했다. 곧이어 이군 아버지가 인공수정 시술을 해준 농가 14곳의 소 300여마리가 줄줄이 살처분됐다. 순식간에 전 재산을 잃어버린 마을 주민들은 일제히 이군 아버지에게 비난 화살을 쏟아부었다. 이 일로 아버지는 스트레스로 쓰러져 자리에 누웠다. 다른 가족들도 이웃 시선을 피해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이후 이군 아버지가 연구소에 방문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구제역 전파’ 의심에서 벗어났지만, 이군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방역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구제역이 발병하면 가축만 잃는 게 아니에요. 피해를 본 농장들은 3년 이상 지나야 원상복구가 되기 때문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죠. 도축되는 가축의 울부짖음과 그걸 지켜보는 농민들이 훔치는 눈물 보신 적 있나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노력에 저도 동참하고 싶어요.”
이군은 “청양에는 소 전문수의사가 3명인데 2명은 곧 은퇴할 분들이라 젊은 수의사가 필요하다”며 “졸업 후 고향에 내려가 지역 농민들의 동물들을 돌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