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미술시장의 대표적인 ‘블루칩’ 작가 이우환 씨(77)는 고 백남준과 더불어 세계 미술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작가다. 일본과 미국 유럽에선 설치미술가로 잘 알려졌지만 국내에선 회화로 특히 유명하다. 그의 추상화는 1970년대 ‘점’ ‘선’ 시리즈로 시작해 1980년대 ‘바람’ 시리즈,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조응’ 시리즈로 이어진다.

국내 생존 작가 중 그림값이 가장 비싼 이씨의 추상화 ‘점’ 시리즈의 호당(엽서 2장 크기) 평균가격이 3383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인기를 얻고 있던 ‘선’ 시리즈(2215만원)를 추월했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김영석)가 서울옥션 K옥션 등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에서 최근 5년(2008~2012년) 동안 낙찰된 이씨의 작품 241점(판화 드로잉 제외)을 분석한 결과다.

2008년작 ‘점’ 시리즈의 호당 평균가격은 2378만원으로 ‘선’(1631만원)보다 700만원 높았다. 하지만 2009년 2010년에는 ‘선’의 평균 가격을 밑돌다가 지난해 급상승해 3000만원을 넘어섰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측은 “‘점’ 시리즈의 가격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선’ 시리즈를 넘어선 것은 1970년대 초기작인 ‘선’ 시리즈의 유통량이 매우 적은 까닭에 ‘점’ 시리즈로 수요가 옮겨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점’ 시리즈의 거래도 활기를 띠는 모습이다. 작년 11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는 1977년작 ‘점’(291×162.1㎝)이 196만1181만달러(약 21억3000만원·수수료 제외)에 낙찰돼 이씨 작품 중 최고가를 경신했다. 앞서 2007년 5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는 1978년작 대작 ‘점’이 치열한 경합 끝에 194만4000달러(약 18억원)에 팔렸다. ‘점’ 시리즈의 시장성을 보여준 셈이다. 2010년에는 서울옥션 경매에서 1976년작 ‘점’(169×138.4㎝)이 10억6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국내 경매시장에서 ‘점’ 시리즈는 지난 5년간 출품된 48점 중 34점이 팔려 낙찰 총액 80억원, 낙찰률 70%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선’ 시리즈는 출품작 30점 중 22점이 거래돼 낙찰 총액이 74억원(낙찰률 73%)에 그쳤다.

최근 서울 인사동·청담동 등 화랑가에는 100호(130×160㎝) 크기의 ‘점’ 시리즈가 9억~10억원에 거래되고 있다. ‘선’ 시리즈는 작년 10월 12억원에서 최근 10억원 선으로 하락하며 거래가 주춤한 모습이다. 같은 크기의 ‘바람’ 시리즈는 점당 1억8000만원, ‘조응’ 시리즈는 1억6000만원 선에 나와 있다.

이씨의 작품에 대한 미술계의 대체적인 투자 전망은 ‘관망 후 저가 매수’다. 이학준 서울옥션 대표는 “국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여러 긍정적인 요인이 있어 해외 컬렉터들의 관심이 높은 것 같다”며 “작품 가격이 이미 바닥을 쳐 시장이 받아줄 만한 수준인 것 같다”고 낙관했다. 이에 비해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은 “국내 소비가 침체된 상황이어서 하반기 이후에나 고소득층 및 중산층이 이우환 작품에 대한 투자를 늘려 갈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