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라는 큰 회오리가 지나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선거 전부터 당연히 승리를 점쳤던 사람들이 예상과 다른 결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그들은 왜 선거를 치르기도 전에 그토록 승리를 자신한 것일까.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 사람들이 많다.

1972년 미국에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뉴요커’ 잡지의 영화평론가인 폴린 케일은 이렇게 불평했다. “믿을 수 없어. 내 주위에는 그 사람을 찍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선거가 끝나고 나서 쉽게 패배를 수긍하지 못하는 사람들, 특히 케일처럼 생각한 사람들은 ‘거짓동의효과(false consensus effect)’에 속았던 것이다.

거짓동의효과란 ‘자신의 의견이나 선호, 신념, 행동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착각하는 자기중심성을 나타내는 개념’이라고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설명한다. 이 개념을 처음 개발한 리 로스 교수는 동료교수들과 함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샌드위치광고판 실험’으로 알려진 이 실험에서 로스 교수는 학생들에게 우습게 만들어진 광고판을 걸치고 30분간 교정을 돌아다닐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본인의 수락 여부에 관계없이 얼마나 많은 다른 사람들이 수락할 것인지 예측하도록 요청했다. 광고판을 걸고 돌아다닐 수 있다고 답한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도 약 62%가 수락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반면 안 하겠다고 답한 학생들은 다른 평균 33%만 수락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어떤 이유로 실험을 수락하고, 거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도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사람들은 왜 거짓동의효과에 빠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자존감이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려면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아야 자신 있게 일을 할 수 있다. 주변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면 아마도 정신적으로 힘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사람들을 자신의 지지자로 믿고 싶은 마음이 거짓동의효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기업의 리더들은 거짓동의효과에 빠지기 쉽다. 대표적인 인물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스티브 잡스다. 애플을 세우고 CEO가 된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했던 제품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매킨토시 컴퓨터였다. 당시 경쟁제품인 IBM 호환기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성능을 가진 매킨토시의 문제는 가격이었다.

성능이 뛰어난 것은 틀림없지만, 경쟁제품보다 몇 배나 비싼 제품이 시장에서 환영받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며 가격을 낮추자는 부하직원을 용서하지 않았다. ‘최고의 제품은 최고의 가격에 잘 팔릴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매킨토시는 생각대로 팔리지 않았고, 결국 잡스는 애플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잡스는 애플을 떠나고 나서도 자신이 거짓동의효과에 빠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애플을 떠나자마자 넥스트라는 제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회사를 차렸다. 넥스트는 매킨토시보다 더 좋은 성능을 가진 컴퓨터였다. 당연히 가격도 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잡스는 이런 컴퓨터라면 잘 팔릴 것이라고 자신했다. 너무 높아진 가격은 개인용보다는 기업용 서버급 시장을 목표로 하면 될 것이라고 믿고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넥스트마저도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나중에 쓰러지는 애플을 살리게 되는 잡스에게는 그 쓰라린 경험이 큰 약이 됐다.

부하직원은 자신의 반대가 나중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 어차피 리더의 뜻대로 진행될 가능성 등을 감안해 굳이 반대의견을 내세우지 않을 수 있다. 지인들의 경우 관계를 감안해 적극적인 반대 대신 적당한 수준의 조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생각과 태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거짓동의효과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잡스는 자신의 쓰라린 경험 이후에 동양 인문학에 대한 연구를 했고, 중요한 지혜를 배웠다. 반대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나서 판단하는 것이다. 애플로 복귀하기 이전 잡스의 태도는 ‘안하무인’이었다고 밝히는 서적들이 있었다. 잡스는 복귀한 뒤 반대자들의 의견을 따르지는 않더라도 듣는 태도를 가졌다. 반대자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면, 적어도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제3의 전문가 의견은 들어야 한다. 그래야 객관적인 입장에서 좋은 점과 개선할 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계평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