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고 시험문제 사 '땅짚고 헤엄쳐'…수법도 치밀했다

2천만원에 교육전문직(장학사·교육연구사) 자리를 사고 팔았다.

거액의 돈을 받고 교육전문직 선발 시험 문제를 유출한 혐의로 현직 장학사와 돈을 준 교사가 경찰에 잇따라 구속되면서 교육계의 추악한 '검은 거래'의 실체가 또다시 드러나고 있다.

◇검은 거래의 실체
뇌물공여 및 위계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10일 경찰에 구속된 충남 천안의 현직 교사 A(47)씨는 지난해 7월 충남교육청 교육전문직 선발 시험을 앞두고 중등 논술 문제 6문항과 면접 문제 3문항을 이미 구속된 태안교육청 소속 장학사 B(47)씨에게 전달받았다.

A교사는 그 대가로 현금 2천만원을 건넨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사실상 시험 문항 전체를 넘겨받은 것이다.

충남교육청의 교육전문직 선발은 논술과 면접평가, 현장 실사로 이뤄진다.

A교사는 돈으로 산 문제로 '땅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손쉽게 시험에 합격해 다음 달까지 장학사 현장실습을 할 예정이었다.

수사과정에서 B장학사의 치밀한 행적도 속속 드러났다.

B씨는 장학사 시험 응시를 앞둔 A교사에게 접근했다.

연락할 때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된 대포폰을 사용했고, 시험문제를 주는 대가로는 현금만 요구했다.

특히 3대의 휴대전화에 유심칩 10개를 번갈아 끼워가며 현직 교사들과 통화하는 치밀함을 보인 것으로 확인됐다.

◇드러난 사실은 빙산의 일각(?)
경찰은 이 교사 외에도 돈을 주고 문제를 넘겨받은 교사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경찰은 또 다른 현직 교사도 2천만원을 주고 시험문제를 건네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충남 교육전문직 선발에는 150명가량이 응시했다.

이 중 유·초등 20명, 중등 19명 등 모두 39명이 합격했다.

문제는 지난 5일 A교사에게 돈을 받고 시험 문제를 알려준 혐의(뇌물 등)로 구속된 장학사 B씨가 시험 출제위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험문제에 접근할 권한도 없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시험 출제위원 중 한명으로 수사대상에 오른 C(48·천안교육지원청 소속 장학사)씨가 음독자살을 기도했다.

C씨는 현재 중태다.

음독을 시도한 배경 등 정확한 경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교육전문직 선발시험 문제 유출에 대한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출제위원이던 C씨가 갑작스럽게 음독자살을 기도하면서 연루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C씨는 문제 유출과 관련해 출제위원 중 한 명으로서 경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있으나 소환통보를 받은 적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C씨가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심적 부담을 느껴 자살을 시도한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C씨의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자살 기도 경위와 시험 문제 유출 연루 가능성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은 "C씨는 구속된 B씨와 지난 2011년 장학사 시험에 함께 합격해 그 해 9월 장학사로 동시에 임용됐다"며 "현재까지 두 사람 간의 공모여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일 C씨가 이 사건에 연루돼 음독자살을 기도한 것이라면 출제위원까지를 포함한 더 많은 사람이 가담해 문제 유출이 조직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현재로서는 출제위원도 아니고 이에 접근할 권한도 없는 B장학사가 시험문제를 어떻게 알아 유출했는지, 또 받은 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여전히 미궁 속이다.

경찰은 당시 시험문제 출제위원과 교육청 시험 관리 부서 관계자 등을 상대로 문제 유출 경로를 추적하는 한편 B씨가 받은 돈의 흐름을 규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 수사 어디까지
시험문제 유출 사건과 관련해 현재까지 경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사람은 지난해 중등 교육전문직 시험에 합격한 현직 교사 중 15명 등 모두 20여명이다.

경찰은 B씨의 대포폰 통화내역 분석 등을 통해 수사 대상자를 압축했다.

여기에는 시험 출제위원과 시험을 관리하는 충남교육청 담당부서 관계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현재 진행하는 중등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지난해 함께 시험을 치른 유·초등교육 전문직까지 수사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유·초등과 중등 두 시험에 모두 같은 출제위원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출제위원은 현직 교육전문직이나 전문직을 거친 교장·교감 가운데서 선정된 12명(논술 7명, 면접 5명)이다.

이들 가운데는 대전시교육청 소속 교육전문직 1명씩도 포함됐다.

충남교육청은 출제위원들이 외부와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상태(논술 9박10일, 면접 3박4일)에서 문제를 내고 논술 출제위원들은 평가(채점)까지 마치고서야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다며 그동안 시험문제 유출가능성을 부인해 왔다.

경찰은 B장학사가 현직 교사들에게 먼저 접근해 돈을 요구한 점 등으로 미뤄 이런 거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닐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시험문제지가 아닌 구술로 문제를 주고 받았고, 철저하게 현금 거래만 했기 때문에 관련자들의 진술에만 의존해야 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충남교육청은 이번 사건과 관련, 10일 "반성하며 깊이 사죄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교육계 검은 거래의 전모가 이번 수사로 드러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정찬욱 한종구 기자 jchu2000@yna.co.krjkh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