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을 우려하던 정부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이 집권하자 한시름 덜었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래도 국민의 원전 불신은 사상 최고다. 원전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죄다 의심받는 지경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건설 수주 때와 비교하면 완전히 딴 세상이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사고를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원전 르네상스를 한 방에 날려버렸으니. 그러나 정작 원망할 건 따로 있다. 외부변수 하나에 통째로 흔들려버린 취약한 원전정책이다. 그동안 쌓인 내재적 모순이 그만큼 컸다는 반증 아니겠나. 한국수력원자력만 마구 두들겨 팬다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이다.

'비정상적' '불균형적' 원전정책

더구나 지금의 원전 불신은 반(反)원전론자들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반원전론자들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후쿠시마 영향을 덜 받는 곳이 있다. 미국이 그렇다. 스리마일 섬 사고까지 겪은 미국이다. 하지만 미국 국민은 원전을 지지한다. 바보라서 그런가. 아니다. 원전사업자는 못 믿어도 독립된 규제당국만은 믿는다. 사실 원전을 가동하는 나라치고 고장이나 사고가 없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언론에서 떠드는 게 문제가 아니다. 규제당국에 대한 신뢰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국민 불안감은 완전히 다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아예 규제당국을 믿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 말기에 이르러서야 대통령직속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국민은 원전사업자와 규제당국이 아직도 한통속이라고 의심한다. 원전정책이 지금까지 그래 왔던 업보다.

‘비정상적’ ‘불균형적’ 원전정책은 이것만이 아니다.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원전정책도 불신을 키운다. 원전을 건설하면 뭐하나. 쏟아지는 사용후 핵연료에 대해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유일하게 하는 건 이 핑계 저 핑계대며 다음 정부로 떠넘기는 일뿐이다. 노무현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다 그랬다. 원전 현장에서 사용후 핵연료 저장이 포화가 되든 말든 내 임기만 아니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국가 의사결정시스템이 마비됐다. 그래놓고 정부를 믿으라고 할 수 있나.

'보상일변도'가 되레 투쟁 불러

원전정책이 이러니 멀쩡한 국산품을 ‘짝퉁’으로 몰아세워도 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그럴 바엔 국산화는 왜 했나. 해외 인증서류 논란도 마찬가지다. 밖에서는 위조서류를 아예 위조부품이라고 떠들어댄다. 그런데도 정부는 말이 없다.

원전 불신에 대한 정부 대응은 ‘보상일변도’였다. 불평불만이 나오면 돈으로 입막음하기에 급급했다. 과학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까지도 그래왔다. 그 결과 ‘투쟁’과 ‘보상’은 비례한다는 법칙이 생겼다. 지역마다 더 큰 보상을 위해 더 큰 투쟁을 벌인다. 전형적 ‘탈주효과(runaway effect)’다. 밥과 술로 안 되니 취직을 시켜줬고, 그것도 부족해 지역기업에 온갖 특혜란 특혜는 다 베풀었다. 급기야 마약사건까지 터지고 말았다. 원전 불신을 해소한다는 보상정책이 오히려 원전 불신을 더 증폭시킨 꼴이다. 원전으로 먹고사는 ‘사이비 반원전 세력’을 잔뜩 키운 일등공신은 바로 원칙 없는 보상정책이다.

결국 원전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정부가 됐다. ‘원전 대안 부재론’만으로는 원전 불신을 해소 못한다. 이런 소극적 대응은 오히려 원전의 위기만 더 재촉할 뿐이다. 다른 해법이 없다. 정부 스스로 원전에 당당해져야 한다. 반원전론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말이다. 정부는 그러길 원하는가. 그렇다면 비정상적·불균형적 원전정책, 원칙 없는 보상정책부터 당장 뜯어고쳐라.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