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천연물 신약 정책은 우리나라도 ‘아스피린’이나 ‘타미플루’와 같이 천연물에서 특정 성분을 추출한 국제적인 천연물 신약을 만들어 제약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천연물 신약은 이런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가 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내 제약사와 친분이 두터운 공무원들이 수년간 고시를 수시로 바꾸면서 한약이 곧 천연물 신약이라는 식으로 만들어놨다. 의료계에선 약사 출신이면서 제약사에 우호적인 입장을 내세우는 식약청 공무원들을 ‘팜피아’라고 부른다.

이들 때문에 한약에 대해 문외한인 의사들이 한방 조제인 천연물 신약을 처방하는 일종의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현재 나온 천연물 신약 7종을 살펴보자. 한 해 9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록하는 동아제약 위염 치료제 ‘스티렌’의 경우 쑥을 그대로 달였을 뿐이다. SK케미칼의 관절염 치료제 ‘조인스정’도 위령선 과루근 하고초를 달여서 만들었다. 녹십자의 관절염 치료제 ‘신바로캡슐’은 자생한방병원이 개발한 ‘청파전’의 조제법을 그대로 적용해 캡슐에 담았다. 한국P&G의 골관절염 치료제 ‘레일라정’ 역시 배원식 한의사의 활맥모과주를 토대로 만든 약이다.

한방 조제법 그대로 만든 약…식약청·의사만 양약이라 주장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 따르면 이들 천연물 신약을 만드는 데 투입된 국가 재정은 9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엄청난 금액을 들여 나온 성과지만 결과적으로 한약을 달여 만든 한방 조제약을 알약 캡슐로 만들어 출시하면서 양약으로 포장했을 뿐이다. 그동안 이들 7종 천연물 신약의 수출액은 불과 2억원이다. 그나마 건강기능식품으로 수출된 것이 전부다.

천연물 신약으로 인한 국가 재정 낭비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천연물 신약 7종이 전문의약품으로 등재되고 6종이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을 파탄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재정은 의료인이 고객들에게 전문적인 의료서비스를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런데 현재 의사들이 단 한번도 배운 적 없는 한약을 처방하는 데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돈이 국민건강보험에서 지출되고 있다.

특히 천연물 신약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한약을 의사가 처방함으로써 발생할 수밖에 없는 약의 부작용, 즉 의료사고다. 양약을 한의사가 처방한다면 국민이 처방전을 믿고 복용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한약을 의사가 처방한다면 환자들이 과연 얼마나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1980년대 한의학을 배우지 않은 의사가 한약을 처방했다가 7명이 사망한 의료사고가 발생, 국가적인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이런 모순이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재연될 수도 있는 것이다. 천연물 신약을 의사만이 처방할 수 있도록 한 기존 정책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일본과 같은 약화사고는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의사들은 단순히 제도적인 측면을 들어 천연물 신약이 전문의약품이고 전문의약품의 처방권은 자신들에게 있기 때문에 의사만 처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의사들의 주장에선 환자에 대한 고민과 의학과 의료에 대한 성찰을 찾아보기 어렵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당귀(當歸) 목과(木瓜) 방풍(防風) 속단(續斷) 오가피(五加皮) 우슬(牛膝) 천궁(川芎) 천마(天麻) 홍화(紅花). 한국P&G가 판매하고 있는 천연물 신약 ‘레일라정’의 구성 성분이다. 양방전문건강보험에 등재돼 의사들이 보험급여를 받으며 이 약을 처방하고 있다. 의사들은 과연 이 처방을 보고 어떤 환자에게 어떤 효과가 있을 것인지, 어떤 환자가 복용하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고, 또 부작용은 어떻게 발현될 것인지 설명해 줄 수 있을까.

현재 처방되고 있는 7종의 천연물 신약은 모두 한의학적 원리를 통해 한약재로 만든 신(新)한약제제다. 제약자본의 이익을 위해 왜곡된 제도에 따라 한약이 의사가 처방할 수 있는 천연물 신약으로 만들어진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자신들도 모르는 한약을 지금까지 처방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와 건보료…제약사·의사들에 헛되게 지출

천연물 신약이 한약이라는 공식적인 근거 자료는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된 바 있다. 예를 들어 동아제약 ‘스티렌’의 경우 한의약발전기금으로 만들어진 약이다. SK케미칼 ‘조인스정’은 2000년 복지부 문서에 한약제제로 개발 중인 품목에 올라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천연물 신약으로 출시됐다.

‘레일라정’의 경우 2009년 3월 복지부에서 골관절염을 치료하는 한약이라고 공식적인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신바로캡슐’은 지난해 12월17일 신바로캡슐 개발자인 자생한방병원이 ‘신바로는 한의학적 원리로 만든 한약’이라고 밝히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정부가 한약이라고 인정했고, 개발자가 한약이라고 하는 것을 오로지 식약청과 의사들만이 양약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논란이 계속된다면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국민의 소중한 혈세와 건강보험료가 제약사와 의사들에게 헛되게 지출되고 있는 것이다.

국민 건강을 위해 정부가 그동안 잘못 펼쳐온 정책을 바로잡고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보장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로세워야 한다. 국민 모두의 안전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천연물 신약 문제는 해법이 없이 갈수록 혼란만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아직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제라도 정책을 바로잡아 의료대계의 근간을 바로 세워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