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재정부가 고민에 빠졌다. 지난 1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로부터 ‘대선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조달 계획을 1월 중 마련하라’는 숙제를 받아들고서다. 5년간 135조원, 연평균 27조원을 마련할 계획을 짜내라는 것이다. 인수위 측은 이 중 82조원가량을 세출 절감으로, 53조원을 세입 증대로 해결하라는 큰 원칙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해법은 재정부에 떠넘겼다.

○재량지출 1~2% 삭감도 힘들어

재정부는 곧바로 머리를 싸맸지만 당장 세출절감부터가 만만치 않다. 정부 지출 중 절반가량이 정부가 마음대로 줄일 수 없는 의무지출이기 때문이다. 의무지출은 지방이전 재원, 공적연금, 건강보험 등으로 법에 지급 의무가 명시돼 있다. 이걸 빼고 나면 정부가 손 댈 수 있는 돈(재량지출)은 연간 180조원가량(올해 예산은 342조원) 된다. 재량지출을 중심으로 10% 가까이를 삭감해야 인수위가 세출절감 목표로 제시한 연간 16조원가량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실제 이명박 정부 5년간 매년 각 부처에 ‘재량지출을 10% 줄이라’는 지침이 떨어졌지만 실제 이행률은 기껏해야 1~2%에 그쳤다. 정부가 어느 때보다 균형재정을 강조한 올해도 세출 구조조정은 재량지출의 2%(3조7000억원)에 불과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수년 전부터 예산 절감을 추진해 추가로 절감할 부분도 많지 않다”며 “솔직히 마른 수건을 다시 비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말로만 비과세·감면 정비

더 큰 난제는 세입 증대다. 증세 없이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특히 박근혜 당선인 측이 5년간 48조원을 거둬들이는 방법으로 제시한 비과세·감면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매년 30조원에 육박하는 비과세·감면액 중 60%가 중소기업과 서민 몫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다. 정부도 매년 세법 개정안에 비과세·감면 정비 계획을 담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무산되거나 오히려 늘어나기도 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 5년간 비과세·감면 대상은 오히려 6개 늘었다. 비과세·감면 정비 계획이 매년 ‘말잔치’에 그친 것.

재정부 관계자는 “박 당선인 재원 마련 공약 중 재정부에 해당하는 사안이 26개인데 이 중 15개가 비과세·감면”이라며 “예산은 정부가 강제로 삭감할 수도 있지만 비과세·감면은 법을 바꿔야 해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히 지금처럼 여·야가 팽팽하게 대치하는 상황에선 더더욱 어렵다는 게 재정부의 판단이다.

○돈 쓸 곳은 계속 늘어

이런 상황에서 돈 쓸 곳은 꾸준히 늘고 있다. 만 0~5세 무상보육(추가 비용 4조원),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지급하는 기초노령연금 최대 20만원으로 확대(3조6668억원), 고등학교 무상교육(2조6000억원), 암·심장·뇌혈관·희귀성 질환 등 4대 중증질환 무료 진료(1조5000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재원 조달의 고삐를 더 당겨야 한다는 점. 당장 올해는 11조8000억원만 마련하면 되지만 박 당선인 임기 마지막해인 2017년에는 추가로 드는 돈이 31조원으로 껑충 뛴다. 차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또다시 선심성 정책이 남발되면 재원 마련을 위한 세출 절감과 세입 증대 계획이 무산될 수도 있다.

주용석/이심기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