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그렉시트(Grexit·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화두였지만 올해는 ‘크렉시트(Crexit·위기로부터의 탈출)’를 주목해야 할 것이다.”

독일계 금융사인 알리안츠의 마이클 헤이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내다봤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지난달 그리스의 국가신용등급을 6단계 상향 조정하는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가 진정 단계에 들어섰다는 게 주된 이유다. 미국과 중국의 경기지표도 잇달아 호전되고 있다. 미국 증시는 이미 2008년 금융위기 전 수준을 회복했다.

○금융시장은 이미 ‘위기 탈출’

무엇보다 세계 금융시장의 호조는 위기(crisis)에서 벗어난다(exit)는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S&P500지수는 1472.34로 2007년 12월 이후 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FTSE세계지수도 230.1로 2011년 5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반등했다.

지난주 글로벌 증시에는 2007년 9월 이후 최대 규모인 222억달러(약 23조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이런 가운데 유로화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재정위기가 부각되기 시작한 지난해 4월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향후 시장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투자자들의 심리를 보여줘 ‘공포지수’라고도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가 지난 9일 2007년 6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도위험 회사채인 ‘정크본드’에도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자금이 유입됐다. 금융시장만 놓고 보면 세계 경제는 이미 완연한 봄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잇따른 실물지표 호전에 따른 결과로 보고 있다. 미국의 6개월 이상 장기실업률은 지난해 12월 39.1%로 3년 만에 처음으로 40% 밑으로 떨어졌다. 작년 주택 판매량도 7년 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유로존에서는 지난해 11월 경기체감지수가 6개월래 최고치를 나타냈으며, 생산 및 소비 관련 지표의 하락세도 둔화되고 있다.

신흥국 중에는 중국이 지난해 12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4.1% 증가했다. 인도도 구매관리자지수(PMI) 등 각종 지표가 작년 10월부터 반등하고 있다.

헤이즈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시장의 낙관론은 단기적인 것이 아니라 향후 세계 경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세계 경기가 작년 2분기를 저점으로 서서히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과잉 유동성에 따른 반짝효과”

부정적인 신호도 있다. 독일 연방통계청은 15일 지난해 자국의 경제성장률이 0.7%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2011년 성장률은 3%였다. 세계은행도 올해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4%로 하향 조정했다.

마이클 캔스터 홀야드자산관리 대표는 “금융시장 투자자들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 및 부채 문제가 다시 시장을 흔들어놓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득갑 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연구실장도 “시장이 일부 지표에 긍정적으로 반응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 장기적인 경제 회복세로 보기에는 이르다”고 진단했다. 유로그룹(유로존의 재무장관 회의체) 장클로드 융커 의장 역시 “유로화 가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다”며 과열을 우려했다.

당장 지난주부터 발표되고 있는 미국 기업들의 4분기 실적이 1차 가늠자다. 시장에서는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실적이 전년 대비 평균 1.9%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