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보험사의 보상담당 직원은 작년 말 자살한 A씨 유족에게 보험금을 내주는 과정에서 다시 한 번 서류를 들여다봤다. A씨가 생명보험에 가입한 지 정확하게 2년하고도 하루가 지난 시점에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선 ‘고의 자살’을 막자는 취지로 보험 가입 후 2년이 지나지 않으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보험 계약자의 유족 등에게 한 해 약 2000억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생명보험 가입 후 3년째 자살하는 비율이 높아 금융당국이 자살 보험금 면책(무보장) 기간 연장을 검토 중이다.

삼성생명한화생명, 교보생명, 농협생명, 흥국생명, KDB생명, 우리아비바생명, BNP파리바카디프생명 등 8개 생보사가 자살한 계약자의 수익자에게 작년 지급한 보험금은 총 1205억원(4637건)이었다. 보험 1건당 2600만원꼴이다. 전체 23개 생보사로 확대하면 2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됐다.

생명보험 가입 2년 이후 계약자의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보험연구원은 최근 ‘생명보험의 자살 면책기간이 자살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서 “자살기간의존지수를 산출해보니 보험 가입 3년차에서 유독 높은 변동성을 보였다”고 공개했다. 이창우 연구위원은 “보험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탈 수 있는 시점에 ‘반응’한다는 결론을 도출했다”며 “면책기간을 완전히 폐지하면 자살률을 낮출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자살에 따른 보험금 지급 면책기간을 늘리는 추세다. 일본에선 1999년 종전 1년이던 면책기간을 2년으로, 2004년에 다시 3년으로 연장했다. 1990년대 후반 자살자 수가 연간 3만명을 넘으면서 사회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독일 역시 2008년 보험계약법을 개정해 자살 면책기간을 3년으로 명시했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당 33.5명(2010년 기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2.8명)의 2.6배 수준이다.

다만 호주 벨기에 스웨덴 등 자살률이 낮은 국가들은 면책기간을 1년으로 유지하거나 아예 없애기도 했다.

당국은 보험 표준약관의 ‘자살 면책기간 2년’ 조항을 3년 이상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국의 한 관계자는 “자살 면책기간을 늘리면 다수 계약자의 보험료를 낮추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단체들은 자살 면책기간을 늘리는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보험금과 자살의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 보장만 약화시킬 것”이라며 “저금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보험사들이 보험금을 덜 주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