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글로벌 기업이라고 불리는 기업들의 평균 수명은 50년 정도 됩니다. 한국 기업의 평균 수명은 24년이라고 하네요. 기업의 평균 수명은 시장에 따라 달라지긴 합니다만, 여전히 기업이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죠. 제가 보는 지속가능 기업은 사회적인 이슈나 큰 트렌드에 관심을 갖는 회사입니다. 특히 기업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와 소통을 잘하고 배려하는 회사라고 분석됩니다.”

KAIST 경영대 최고경영자과정(AIM) 가을학기 열네 번째 시간. 김성우 KPMG 기후변화·지속가능경영 아시아·태평양본부장은 ‘지속가능한 기업의 조건’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글로벌 회계법인인 KPMG는 기업 컨설팅 부문에서도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다. 김 본부장이 소속한 기후변화·지속가능경영 컨설팅 부문은 세계 50개국에 700여명의 직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해관계자와 소통은 장수기업의 조건

2010년 도요타가 겪은 대규모 리콜 사태는 세계 1위 자리를 내놓는 결과로 이어졌다. 김 본부장은 도요타 사례가 기업의 소통과 지속가능경영의 관계를 잘 나타내준다고 설명했다.

“도요타는 원가 절감을 안정성보다 우선하면서 부품 공급업체들을 지속적으로 몰아붙였습니다. 거래처와의 소통이 부족했죠. 또 고객에게 사과도 늦게 했습니다. 고객들과의 교류에도 소홀했던 것입니다.”

김 본부장은 이어 TV 가요 경연 프로그램인 ‘나는 가수다’의 한 장면을 강의실 프레젠테이션(PT) 화면에 띄웠다. “‘나는 가수다’는 가수들끼리 매주 순위를 가려 꼴찌는 떨어지는 식으로 경쟁하는 프로그램이죠.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보다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유명한 가수들이 떨어지는 경우가 심심찮게 발생합니다. 반대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가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도 많이 있죠.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규칙을 볼 수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들의 이해관계자, 즉 고객은 청중 평가단입니다. 현장에 있는 평가단은 한편으론 굉장히 새롭고 자극적인 것을 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극적인 게 반복되면 쉽게 질리기도 하죠. 유명한 가수들이 떨어진 것은 이 평가단이라는 새로운 룰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공유 가치 창조

요즘 경영학계에선 기업이 사회에서 해야 할 역할로 ‘공유 가치 창조(creating shared value·CSV)’가 화두(話頭)로 등장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의 길로 제시돼 온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CSR)이 단순한 기부를 넘어서는 기업의 임무를 강조했다면 CSV는 기업이 장수하려면 사회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개념이다.

“CSV는 아직까지는 실체가 모호한 개념입니다. 아직 뚜렷한 사례도 없죠. 마이클 포터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011년 처음으로 주장한 개념인데, 정치적·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한국에 곧바로 전파됐습니다. ‘기업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이익을 볼 수 있도록 기업 경영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적용되긴 어려운 개념이죠.”

○향후 20년 메가트렌드가 될 기후 변화

김 본부장은 KPMG가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지구정상회의 이후 20여년간의 변화를 토대로 분석한 향후 20년간의 메가트렌드(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이슈)를 소개했다. 1992년 이후 무역은 3배,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활용한 교류는 200배, 인구는 25% 증가했다.

“반면 자원 배분의 불균형으로 13억명이 에너지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40억명이 물 부족을 겪고 있습니다. 개발이 지속될수록 그늘도 커지는 것이죠. 유엔과 유네스코, 세계은행 등이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KPMG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KPMG가 꼽은 첫 번째 메가트렌드는 기후 변화다. “기후 변화는 나머지 모든 메가포스(mega-force)의 원인이 되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향후 20년간 지구의 기온은 3.5도가량 오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세계 국가들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억제하기 위한 노력을 더 하게 되겠죠. 그 다음 이슈는 인구입니다. 20년 뒤 지구의 인구는 85억명 정도 될 것입니다. 기업들의 잠재적인 고객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원의 희소성은 더 심각해지기도 하겠죠.”

그 다음은 기후 변화와 인구 증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에너지 문제다. 20년간 에너지 수요는 33%가량 늘어나고, 석유나 석탄 같은 화석연료 시장은 더 요동칠 것으로 전망했다. 물 부족 문제를 겪는 사람은 40%가량 증가하고, 식료품 가격은 두 배 뛸 것으로 예상됐다.

“이런 메가트렌드가 기업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우선 기후 변화 자체가 기업에 물리적인 손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2011년 태국 홍수로 도요타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기업의 현지 공장에 발생한 피해가 4억달러에 이릅니다. 또 의류 업체들은 원재료 가운데 하나인 면화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죠. 펄프업체들은 숲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평판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법적, 사회적인 규제도 더 커지고요.”

○단기 의사 결정에도 CSV 고려해야

김 본부장은 이어 지난해 10월 발표된 한국의 녹색기후기금(GCF) 유치 기사 동영상을 PT 화면에 틀었다.

“강의 초반 말씀드렸던 CSV는 정부나 환경단체에는 아주 익숙한 개념입니다. 모두에 이익이 되는 가치를 창출하는 게 그 존재 이유니까요. GCF가 CSV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선진국들이 매년 1000억달러를 모아서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CSV는 기업엔 잘 와닿지 않는 개념입니다. 근본적으로 기업은 불확실성과 긴 투자 회수 기간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시장 상황에 맞는 단기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역시 CSV에 관심을 갖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속가능경영을 위해선 단기 의사 결정에 있어서도 CSV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직접 CSV를 하지 않더라도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최소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단기 의사결정에서도 CSV를 고려해야 할 이유로 이해관계자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쉬운 비즈니스 모델로 쌀집(기업)을 제시했다. 쌀집의 이해관계자는 정부, 종업원, 투자자, 공급자, 구매자, 지역사회 등으로 단순화시켰다. 쌀집에 CSV를 요구하게 되는 환경의 변화는 기후 변화다.

“예전에는 정부가 쌀집 허가를 특별한 규제 없이 내줬습니다. 하지만 쌀집이 쓰는 에너지 때문에 기후 변화가 생기는 것이라는 인식이 생기면 에너지 사용을 규제하게 되겠죠. 투자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후 변화로 쌀 가격이 출렁이게 되면 쌀집의 에너지 소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이것저것 주문하게 됩니다. 주변의 이런 요구들은 단기 의사 결정에 영향을 미치죠. 지역사회 역시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후 변화에 맞춰 지역사회가 댐을 쌓고 도로를 정비한다고 하면 쌀집도 그 변화를 비즈니스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는 직접적으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기업은 아니다. 하지만 월마트가 유통하는 상품들을 제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양을 고려해 납품업체에 일정한 탄소 발생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이 공급자와 수요자 입장에서도 단기적인 CSV를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작은 변화로도 큰 효과 얻을 수 있어

김 본부장은 CSV와 관련한 기업의 단기 의사 결정의 하나로 오뚜기 사례를 들었다. 오뚜기는 ‘씻어나온 쌀’이라는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데, 마케팅 포인트를 ‘편리하다’로 잡고 있었다. 하지만 CSV를 통해 관점을 바꿔 ‘쌀을 씻을 필요가 없으니 물을 낭비할 필요도 없어서 환경 친화적’이라고 전략을 바꿨다. 그리고 ‘친환경 요리’라는 라벨을 붙였다.

“이런 변화 시도는 고객의 행동 변화를 유도해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특히 경영하는 분들이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런 변화가 기업 전체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꾼다거나 하는 대규모 작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소한 부분에서 관점만 바꾸는 것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정보기술(IT)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구글 역시 환경과 CSV를 상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구글의 ‘환경데이터분석시스템’은 지난 25년간 위성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을 데이터베이스로 만든 다음, 개발로 인해 매일 파괴되는 세계의 삼림 지도를 공개하고 있다.

“구글의 이런 시도는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 환경에 대한 경각심뿐 아니라 ‘IT로 이런 것까지 가능하구나’라는 새로운 시각까지 주게 되죠. 기업에 대한 평가는 자연스럽게 올라가게 됩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강의 = 김성우 <KPMG 기후변화·지속가능경영 아태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