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핫’한 아티스트 한 명을 꼽으라면 업계에서는 주저하지 않고 레이디 가가를 선택한다. 그가 벌어들이는 돈이 모든 걸 말해준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가가가 2011년 올린 매출은 9000만달러(약 950억원). 2위권 가수들이 벌어들인 매출의 두 배를 훌쩍 넘는다.

가가의 행보는 파격을 넘어 충격이다. 망사나 비닐 의상은 물론 생고기를 몸에 붙이거나, 가짜 피를 뿌리며 ‘자살 퍼포먼스’를 하기도 한다. 그런 그의 옆에는 항상 정장을 단정히 차려입은 한 흑인 남성이 있다. 가가의 매니저이자 소속사인 아톰팩토리 대표인 트로이 카터다. 카터는 5년 전 155㎝ 단신의 평범한 외모인 가가를 발굴해냈다. 공중파 방송국들이 가가를 무시하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슈퍼스타로 키워냈다. 기존의 SNS에서 마케팅의 한계를 느끼자 열성팬 중심의 폐쇄적 SNS를 새로 개발했다. 필라델피아 슬럼가에서 고등학교만 간신히 졸업한 흑인 청년은 이제 음악업계는 물론 ‘실리콘밸리의 떠오르는 거물’로 평가받는다.

○‘슬럼가의 꼬마’가 ‘힙합업계의 신데렐라’로

카터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홀어머니는 감염 위험에 노출된 병원 수술도구를 닦는 일을 했다. 어머니는 쉬는 날 없이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고, 카터와 그의 동생은 거리를 떠돌았다. 그는 “펀드매니저나 의사 중에선 우리같이 생긴 사람은 없었다”며 “마약을 팔거나 랩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밖에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카터는 음악을 택했다. 래퍼를 꿈꿨지만 곧 자신이 음악을 직접 하기보단 좋은 음악을 발굴하는 데 더 소질이 있음을 깨달았다. 고등학교 친구들 중 랩을 잘하는 두 명을 찾아 그들의 데뷔를 도왔다. ‘제지 제프 앤드 프레시 프린스’가 그의 작품이다. 할리우드의 슈퍼스타로 자리잡은 윌 스미스가 둘 중 한 명이었다.

음악산업계를 기웃거리던 그에게 첫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유명 래퍼이자 사업가인 피 디디(P Diddy)를 만난 것. 피 디디는 카터의 소질을 알아보고 유명 힙합음악 기획사인 베드 보이에 그를 취직시켰다. 카터는 피 디디를 보고 “고졸의 흑인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음악계에 진출한 그는 전설적 래퍼인 ‘노토리어스 비아이지(Notorious B.I.G)’를 발굴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대기업 내에서의 성공에 만족할 수 없었다. 그가 보기에 대형 음반기획사 대표들은 CD 판매량에 치중했을 뿐, 진짜 슈퍼스타를 기르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2004년 자신만의 회사를 세우기로 결심했다.

○SNS로 만든 슈퍼스타, 레이디 가가

2008년 어느날, 카터의 사무실에 친구가 키 작은 신인 가수 한 명을 데려왔다. 스테파니 게르마노타라는 길고 이상한 이름을 가진, 평범한 외모의 여자였다. 그게 카터의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였다. 카터는 그의 음악을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자신이 슈퍼스타를 찾았음을 깨달았다. 그가 바로 가가다.

카터는 가가를 홍보하기 위해 공중파 방송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방송국 PD들은 “클럽에서나 어울릴 음악”이라며 가가를 무시했다. 그럼에도 카터는 가가에게 음악을 바꾸라고 하지 않았다. 그와 가가는 ‘95:5’의 불문율을 철저히 지켰다. 음악에 있어선 가가가 95%의 결정을 하고, 사업에 있어선 카터가 95%의 결정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가가와 카터는 서로를 존중했다.

때마침 페이스북, 트위터 등 SNS가 서서히 부상하고 있었다. 카터는 SNS가 음악 마케팅을 혁신적으로 바꿀 것임을 직감했다. 그는 가가에게 체계적으로 SNS를 활용하도록 지시했다. 가가는 다른 연예인들과 달리 친구처럼 솔직한 메시지를 SNS에 올렸다. 욕설을 섞었고, 성(性)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동영상 서비스인 유튜브에도 적극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올렸다.

가가는 전 세계에서 SNS를 적극적인 마케팅 도구로 활용한 최초의 가수중 한 명이다. 가가의 파격적 행위예술과 솔직한 발언은 전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지금 가가의 트위터 팔로어는 약 3100만명. 세계에서 가장 많다.

가가가 크게 성공하면서 카터의 존재도 업계에 확실히 알려졌다. 아톰팩토리는 현재 소울 음악의 거장인 존 레전드, 인도 발리우드 출신의 인기가수 프리얀카 쇼프라 등 슈퍼스타들의 매니징을 담당하고 있다.

○음악을 넘어 SNS 업계 리더로

어느날 가가와 카터는 함께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소셜네트워크’를 봤다. 영화를 보던 가가는 카터에게 “페이스북 말고 팬들과 좀 더 친근하게 소통할 수 있는 SNS는 없을까”라고 물었다. 세 번째 기회였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기존 SNS를 통한 마케팅은 한계가 있었다. 팬들이 어느 지역에서 접속했는지는 알 수 있었지만 그 팬이 얼마나 가가를 좋아하는지, 가가를 위해 얼마만큼의 돈을 쓸 의향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카터는 구글의 디자이너인 조이 프리미아니 등 실리콘밸리의 친구들과 함께 2011년 폐쇄적 SNS 제작업체인 ‘백플레인’을 창업했다. 그리고 가가의 팬 전용 SNS인 ‘리틀몬스터스닷컴’을 만들었다. 리틀몬스터스닷컴은 기존 가입자의 추천이 있어야 가입할 수 있다. 가가의 골수팬만 회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카터는 “페이스북은 옛 친구를 만날 때 더 유용한 형식”이라며 “우리는 수많은 SNS 회원 중 ‘돈이 되는’ 사람이 누군지 골라내는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이전엔 미국 유명 가수들은 아프리카에서 콘서트를 열지 않았다. 막연히 돈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터는 리틀몬스터스닷컴을 통해 아프리카에도 콘서트 표를 살 의향이 있는 골수 팬이 많다는 걸 알아냈다. 가가는 최근 자신의 세계투어인 ‘본 투 디스 웨이(Born to this way)’에 아프리카 국가들을 포함시켰다.

백플레인은 SNS의 개념을 완전히 바꿨다는 호평을 받았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 숀 파커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등 실리콘밸리의 거물들이 백플레인에 투자했다. SNS를 어떻게 활용할지 몰라 허둥대던 기업들은 백플레인에 마케팅을 의뢰하고 있다. 백플레인은 최근 한국의 CJ와 협업으로 미국에 K팝을 알리기 위한 ‘케이팝커뮤니티’라는 SNS도 만들었다.

카터의 도전은 멈출 줄 모른다. 백플레인과 함께 ‘AF스퀘어’라는 벤처캐피털도 창업했다. 실리콘밸리의 음악 벤처기업에 돈을 투자하고 있다. 그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정확한 실적은 밝힐 수 없지만 AF스퀘어는 매년 60~70%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게임업체 징가와 협력해 ‘가가빌’이라는 게임도 만들었다. 미션을 완수하면 가가의 노래를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게임이다. 최근엔 ‘팝워터’라는 브랜드로 음료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뉴욕타임스는 “카터는 팬들과 소통하고 SNS의 정보를 활용하는 새로운 기준을 세웠다”며 “SNS 업계의 떠오르는 거물”이라고 평가했다.

남윤선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