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새로운 ‘환율전쟁’의 문턱에 서 있다.”

알렉세이 을유카예프 러시아 중앙은행 수석 부총재는 16일(현지시간) “엔화 가치를 (일부러) 떨어뜨리는 일본을 다른 나라들도 따라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이 엔화 약세에 반발, 환율방어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전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환율전쟁에 대한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올해 주요20개국(G20) 의장국인 러시아가 이같이 경고한 점에 주목했다. 다음달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중앙은행 총재 회동에서 환율 문제가 주요 의제로 떠오를 수 있다는 얘기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17일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에 대해 매우 우려스럽다” 며 “글로벌 금융시장의 유동성이 과도하게 넘쳐흐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임스 블러드 미국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장도 최근 “이웃나라 거지 만드는 정책을 우려한다”고 했다. 글렌 스티븐스 호주 중앙은행장은 “전세계 통화정책 모임이 시끄럽다”고 지적했다.

단연 눈에 띄는 나라는 일본이다. 아베 총리는 엔화를 무제한 푼다는 양적완화 공약으로 지난해 11월 총선 유세 직전 80엔을 밑돌던 엔달러 환율을 최근 89엔대로 끌어올렸다. 엔화 가치가 그만큼 낮아졌단 뜻이다. 아베 총리는 다음주 열리는 일본은행 통화정책회의에서 추가 완화조치가 나와야 한다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럽도 환율전쟁을 예고하는 첫 포문을 열었다. 장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이 “유로화 가치가 위험할 정도로 높다”면서 더 이상 유로화 강세를 용인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일본의 공격적인 통화정책으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경제 피해가 가시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며 “유럽도 유로화 환율을 다른 통화에 고정(페그)하거나 환시개입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도 통화강세가 자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두 국가의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최근 자국통화 강세가 지속될 경우 금리를 인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유럽에서 국제 외환시장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국가는 스위스. 스위스 중앙은행은 환율 하한선을 1유로당 1.20스위스프랑으로 못박았다. 환율 하한선을 지키기 위해 그동안 수천억유로를 매입했고, 이를 다른 통화 자산으로 다변화하는 과정에서 호주달러와 스웨덴의 크로나 가치를 끌어올려 빈축을 샀다.

블룸버그는 “세계 각국이 앞다퉈 환율방어로 수출확대를 노리고 있다”며 “다른 국가의 경쟁력을 저해해 상호 보복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