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증권사 IB 업무 현주소…회사채 재고 쌓아놓고 금리만 쳐다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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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채 떠안고 안절부절하다 금리 내리자 집중적으로 팔아
'수수료 받자' 인수 경쟁만…시장 조성자 역할은 '뒷전'
'수수료 받자' 인수 경쟁만…시장 조성자 역할은 '뒷전'
증권사 투자은행(IB) 부서가 최근 금리 하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영업용 곳간을 가득 채웠던 ‘회사채 재고’ 값이 올라 큰 손실 없이 물량을 처분할 수 있게 돼서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재고 물량은 신규 회사채 인수 영업을 위협할 정도로 부담이 됐다.
하지만 증권사 IB부문조차 위탁매매와 같은 천수답식 영업에 의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 조성자’로서 팔릴 만한 가격을 제시하는 역할은 뒷전이고 경쟁적으로 비싼 값에 회사채를 떠안은 뒤 금리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영업 행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평가손실 우려 덜어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이달 들어 대림산업 대우조선해양 대한항공 삼성물산 OCI 등 미매각 회사채 보유 물량을 집중적으로 내다팔고 있다.
대림산업 248회와 대우조선해양 5-2회 1500억원어치씩, 대한항공 49-1회 400억원어치가 최근 증권사에서 기관투자가 계좌로 넘어갔다. 이들 회사채는 모두 작년 11월과 12월 발행 당시 시장 매각에 실패해 주관증권사들이 떠안은, 이른바 미매각 회사채다.
증권사들의 미매각 회사채 보유량은 작년 한때 보유 한도에 근접한 수준까지 늘어났다. 동부증권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미매각 회사채 규모는 작년 11월 말 최대 4조4000억원(자체 투자 목적으로 인수한 물량 포함)까지 증가했다. 많은 증권사가 회사당 1000억~3000억원 수준인 미매각 회사채 보유 장부(통칭 인수북)를 가득 채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물량은 작년 말 시장금리 상승으로 증권사들에 적지 않은 평가손실을 입힐 것으로 전망됐다. 금리가 올 들어 급격히 방향을 틀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작년 말 연 2.82%에서 이날 연 2.72%로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인수북에 쌓아둔 회사채에 대해서는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지 않는다.
○금리만 쳐다보는 영업 반복
증권사들은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시점은 더 미뤄지게 됐다. 미매각 회사채 증가는 증권사들이 비생산적인 가격 경쟁에만 매달린 결과물인데, 금리가 떨어진 덕분에 같은 방식의 영업을 재개할 여유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발행 기업에 잘보이기 위해 팔릴 만한 가격보다 비싼 값(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수익성 악화와 IB 역량 정체라는 부작용을 경험해왔다. 이 같은 문제는 작년 4월 수요예측 제도 도입 직후 미매각 물량 급증으로 전면에 부각돼 자금조달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작년 7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 미매각 물량 부담이 단숨해 해소되면서 다시 금융당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사태 이후 나타난 회사채시장 경색이 너무 빨리 해소된 것 같다”며 “좀 더 오래갔더라면 증권사들이 투자자 쪽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시장조성자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
하지만 증권사 IB부문조차 위탁매매와 같은 천수답식 영업에 의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 조성자’로서 팔릴 만한 가격을 제시하는 역할은 뒷전이고 경쟁적으로 비싼 값에 회사채를 떠안은 뒤 금리가 떨어지기만 기다리는 영업 행태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평가손실 우려 덜어
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이달 들어 대림산업 대우조선해양 대한항공 삼성물산 OCI 등 미매각 회사채 보유 물량을 집중적으로 내다팔고 있다.
대림산업 248회와 대우조선해양 5-2회 1500억원어치씩, 대한항공 49-1회 400억원어치가 최근 증권사에서 기관투자가 계좌로 넘어갔다. 이들 회사채는 모두 작년 11월과 12월 발행 당시 시장 매각에 실패해 주관증권사들이 떠안은, 이른바 미매각 회사채다.
증권사들의 미매각 회사채 보유량은 작년 한때 보유 한도에 근접한 수준까지 늘어났다. 동부증권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미매각 회사채 규모는 작년 11월 말 최대 4조4000억원(자체 투자 목적으로 인수한 물량 포함)까지 증가했다. 많은 증권사가 회사당 1000억~3000억원 수준인 미매각 회사채 보유 장부(통칭 인수북)를 가득 채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물량은 작년 말 시장금리 상승으로 증권사들에 적지 않은 평가손실을 입힐 것으로 전망됐다. 금리가 올 들어 급격히 방향을 틀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작년 말 연 2.82%에서 이날 연 2.72%로 하락했다. 일반적으로 인수북에 쌓아둔 회사채에 대해서는 금리 변동에 따른 위험을 헤지하지 않는다.
○금리만 쳐다보는 영업 반복
증권사들은 일단 고비를 넘겼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시점은 더 미뤄지게 됐다. 미매각 회사채 증가는 증권사들이 비생산적인 가격 경쟁에만 매달린 결과물인데, 금리가 떨어진 덕분에 같은 방식의 영업을 재개할 여유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국내 증권사들은 발행 기업에 잘보이기 위해 팔릴 만한 가격보다 비싼 값(낮은 금리)에 회사채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수익성 악화와 IB 역량 정체라는 부작용을 경험해왔다. 이 같은 문제는 작년 4월 수요예측 제도 도입 직후 미매각 물량 급증으로 전면에 부각돼 자금조달시장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작년 7월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 미매각 물량 부담이 단숨해 해소되면서 다시 금융당국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역은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사태 이후 나타난 회사채시장 경색이 너무 빨리 해소된 것 같다”며 “좀 더 오래갔더라면 증권사들이 투자자 쪽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 시장조성자로서 역할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호 기자 t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