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생상품 관련 부서에서만 5명이 퇴사 의사를 밝혔습니다. 모두 입사한 지 3년이 채 안된 직원들입니다. 창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은 데다 제대로 된 비전이나 성장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전직을 하겠다고 합니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이중 삼중의 규제 아래서는 다양한 시도와 도전이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자본시장의 첨병인 금융투자업계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주식시장 거래량이 급감해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상품 개발과 신사업 확대는 각종 규제에 발목을 잡혀 쉽지 않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지난해 발표한 2012년 국가 경쟁력 조사(총 144개국)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71위)와 자율성(114위·순위가 낮을수록 정부규제가 많음)은 경제 규모(14위)에 비해 훨씬 뒤처지는 것으로 나왔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산업의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는 얘기다.

◆금융위기 이후 강화된 금융규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융규제가 강화되는 추세다. 한국에서도 금융투자회사의 건전성과 영업에 대한 규제수위가 높아졌다. 증권사별 신용융자와 콜차입 규제가 이뤄졌다. 자기자본의 40% 한도 내에서 허용됐던 신용융자 규모는 지난해 2월 말 현재 신용융자 잔액 이내로 제한됐다. 신용융자 규모가 제한되면 증권사의 수익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가장 타격을 받은 건 파생상품시장이다. 증권사들이 영업권만 한 번 취득하면 자유롭게 취급할 수 있었던 장외파생상품은 항목별 인가 방식으로 바뀌었다. 2011년 8월 옵션 매수 전용 계좌 폐지에 이어 지난해 3월엔 주식워런트증권(ELW)시장 유동성공급자(LP) 호가제출 제한과 외환(FX) 마진거래의 위탁증거금률 인상 등이 잇따랐다. 그 결과 파생상품 거래는 급감했다. 하루 평균 ELW시장의 거래대금은 2011년 1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3월 이후 1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업계에선 금융혁신과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09년 시행된 자본시장법이 이 같은 각종 규제로 인해 제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들이 나온다.

◆“과도한 건전성 규제”

업계에서 ‘과도하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사례는 영업용순자본비율(NCR) 규제다. NCR은 증권사의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지표로, ‘증권사판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라고 불린다. 자본시장법은 NCR 100% 이상을 유지할 의무만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NCR이 150% 미만으로 떨어지면 적기 시정조치 대상으로 분류한다. 이를 BIS 비율로 환산하면 12% 수준이다.

증권사들은 BIS 비율 8% 이상만 유지해도 되는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도한 규제를 받는다고 입을 모은다.

ELW 상장이나 LP, 국고채 전문 딜러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NCR 250%를 충족해야 한다.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가 거래 증권사를 선정할 때도 NCR 400% 이상에 최고점을 부여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요 증권사의 NCR은 500%를 웃돌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41개 증권사의 평균 NCR은 479%다. 평균 NCR이 300%로 낮아지면 증권사들은 추가적으로 3조2971억원을 상품유가증권 등 위험자산에 투자할 수 있게 된다. NCR을 250%로 낮추면 5조906억원, 150%로 낮추면 12조2646억원의 추가 위험 투자가 가능해진다. 김종철 미래에셋증권 이사는 “증권사 업무는 위험하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다”며 “지나치게 엄격한 건전성 규제는 자기자본 활용도를 떨어뜨려 산업의 경쟁력과 성장성을 저해시킨다”고 말했다.

일본은 한국처럼 NCR 규제를 비율 기준으로 하고 있다. 다만 적기 시정 조치 대상은 한국보다 30%포인트 낮은 120%다. 미국과 영국은 금액 기준으로 NCR 규제를 하고, 호주와 캐나다는 공적 규제가 아닌 자율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기회비용이 최대 매출의 20%”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수수료 인하 등이 강조되는 분위기도 금융투자회사들의 수익에 부담이 되고 있다. 금융투자회사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받으며 주식거래 수수료, 상장지수펀드(ETF), 해외선물거래 수수료 등을 경쟁적으로 인하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엔 장내파생상품 거래예수금을 예금보호 대상에 편입시키기로 했다. 한 대형 증권사 기업금융 담당 임원은 “수수료 인하와 예금보호제도 등 각종 규제 정책에 따른 기회비용을 추산해보니 매출의 10~20% 정도 되는 걸로 나왔다”고 말했다.

복잡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규제도 시장활성화를 저해하는 요인이다.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가 그 예다. 공모펀드는 자본시장법에 따라 규제를 받는다. 반면 사모펀드 규제는 자본시장법 및 개별법(14개)으로 분산돼 있다. 비슷한 투자 대상과 운용전략을 쓰더라도 규율하는 법에 따라 규제가 달라 규제차익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적 규제는 한 번 조치가 이뤄지면 상당 기간 유지돼 장기간 규제 준수 비용이 든다고 입을 모은다. 부작용이 발생하면 규제 목적을 초과하는 사회적 비용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한 대형 증권사 임원은 “유연성이 부족한 획일적 규제는 금융투자회사의 다양성을 떨어뜨리고 궁극적으로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며 “금융상품이나 영업행위 관련 규제는 자율규제를 활용해 자기규율 능력 향상을 유도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