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까지만 해도 서양에서 아이는 독립적인 인격체로 간주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부모의 지도와 보호를 받아야 하는 미완성의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나 계몽주의 사상의 등장과 함께 아이도 자신만의 생각을 가진 독립적인 인격체라는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고 그런 생각을 심화시키는 데는 장 자크 루소 같은 사상가의 역할이 컸다. 이런 시대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귀족계급에서는 아이만을 단독으로 묘사하는 초상화를 주문하기 시작했고 영국은 그런 흐름의 중심에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대표적인 초상화가인 헨리 래번(1756~1823년)은 특히 아이 초상화로 크게 이름을 얻은 인물이었다. 조카를 모델로 그린 ‘소년과 토끼’는 사내아이의 당당한 표정을 통해 독립적 인격체로서의 아이의 자의식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이제 피보호자가 아니라 토끼에게 민들레 잎사귀를 먹이는 보호자로서의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근대의 꽃망울이 아이의 표정을 통해 환히 터져 나오고 있다.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