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하면 공청회 도중 얼마든지 발언 시간을 드릴게요. 토론할 기회조차 막으면 국민 동의를 어떻게 구합니까?”

김대식 보험연구원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보험정보 집중체계 현황, 문제점 및 개선방안’ 공청회를 앞두고 생명·손해보험협회 노조원과 금융노조 간부 수십 명이 단상을 점거했기 때문이다. 당초 오후 3시로 예정된 공청회는 주최 측인 보험연구원과 노조원 간 대치 끝에 30여분 늦게 시작됐다.

토론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일부 노조원은 자신들의 입장과 다른 패널의 발언 순서가 되면 야유를 보냈다. 한 패널은 “보험업계 종사자로서 국민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줘 매우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사과했다.

이번 공청회가 파행을 빚은 것은 소비자의 보험계약 정보를 누가 갖느냐를 놓고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들이 대립하고 있어서다. 10년 넘게 각 기관 간 마찰을 빚어온 해묵은 숙제다. 금융당국은 보험개발원의 명칭을 ‘보험정보원’으로 바꾼 뒤 모든 보험 정보를 일원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실손보험 중복 가입과 보험사기 문제를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용정보법 개정 및 개인정보보호법 시행으로 생명·손해보험협회가 보험 정보를 합법적으로 다루기 어려워졌다는 판단도 하고 있다.

반면 ‘핵심 자산’인 보험 정보를 내주게 된 생명·손해보험협회는 강력 반발하고 있다. 박종화 손보협회 상무는 공청회에서 “생명보험과 손해보험 정보가 매우 다르기 때문에 분리해서 관리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며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험 정보를 한 곳에 모으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재용 생보협회 시장업무지원본부장은 “기관 이기주의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라고 항의했다.

이날 공청회 패널로 총 8명이 참여했고, 결과적으로 보험정보원 설립을 옹호한 쪽이 4명, 반대한 쪽이 3명이었다. 한 명은 중립 입장을 보였다. 공청회는 이처럼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 토론하고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는 ‘열린 마당’이다. 아무리 조직 위기감이 크다고 해도 토론할 자리를 원천봉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 원장이 “금융권 민원의 80%가 왜 보험 분야에 집중돼 있는지 자성해야 한다”고 꼬집은 말을 보험협회는 곱씹어봐야 할 것 같다.

조재길 금융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