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일본 간 환율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독일이 주요 20개국(G20)에서 일본의 인위적 엔저정책을 압박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얘기가 블룸버그를 통해 전해졌다.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이 독일의 경쟁력에 미치는 악영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는 조짐이다.

이미 독일 옌스 바이트만 중앙은행 총재와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일본의 과도한 통화정책을 경고한 상황이다. 여기에 장 클로드 융커 유로그룹 의장도 유로화 가치가 지나치게 높다며 맞장구친 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대로 물러설 기미가 없다. 국제시장에서 엔화가 제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라며 한술 더 떠 추가 금융완화 얘기를 흘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뾰족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미국이 양적완화에 불을 붙일 때만 해도 중국 등 신흥국과의 긴장이 문제였지만 지금은 그 차원을 넘어섰다. 미국을 따라 선진국들이 저마다 돈풀기 경쟁에 나서면서 환율전쟁이 선진국 간 갈등양상으로 비화되고 만 것이다. 모두가 공범이라고 할 정도로 상황은 꼬일 대로 꼬여 지금은 마땅한 중재자를 찾기도 어려운 지경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초기 때만 해도 대공황의 교훈을 상기하자던 국가들이었다. 그러나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대공황 당시 미국이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들고 나왔던 게 스무트-홀리법(Smoot-Hawley Tariff Act)이었다. 수입품에 고율의 관세를 물린 이 악법은 경쟁적인 보호무역의 도화선이 됐다. 전 세계 무역이 곤두박질쳤고 세계 경제는 더 깊숙한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지금의 환율전쟁도 다를 게 하나 없다. ‘이웃을 거지로 만들지언정 나부터 살고보자’는 근린궁핍화 정책은 모두를 절벽으로 몰아가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케인스 처방이 대공황을 구해낸 일등공신인 것처럼 말하지만 착각이다. 돈을 풀면 당장은 뭔가 해결될 것 같지만 필요한 구조조정을 지연시키고 결국은 경제를 장기침체로 몰아넣는 독약이 된다. 죄수의 딜레마 게임처럼 작동하는 국가 간 통화전쟁은 세계 경제의 파국만 재촉할 뿐이다. 1930년대 상황을 재연하겠다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