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액션대작 ‘베를린’이 오는 31일 개봉한다. 130억원을 투입한 이 영화는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치는 국제 첩보전쟁. 북한 최고 첩보원 표종성(하정우)이 무기 거래를 하다 남한 국정원 요원(한석규)에게 발각되고 북이 감시 요원(류승범)을 급파하면서 남북 간, 북북 간 싸움으로 번진다.

전지현은 북한 통역사이자 표종성의 아내 련정희 역을 맡았다. 2001년 ‘엽기적인 그녀’(485만명)로 정상에 오른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 사상 최대 관객을 모은 ‘도둑들’(1302만명)로 화려하게 재기한 그를 23일 서울 명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엽기적인 그녀로 스타가 됐을 때 저는 그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어요. 아무 것도 몰랐던 거죠. 그 후 10여년간 출연작들의 흥행이 저조하고 좋지 않은 평가도 따라다녔습니다. 문득 ‘그때가 마지막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을 때 ‘도둑들’이 터졌어요. 이런 경험을 해봤으니 이번 영화에서는 예전보다 더 열심히 연기하게 되더군요.”

‘베를린’은 액션 연출이 뛰어난 류승완 감독이 메가폰을 쥔 데다 하정우 한석규 류승범 등 호화 배역진이 함께해 무조건 출연했다고 한다. 남자 배우들이 화려한 무술과 총격 액션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그는 첩보원의 슬픈 운명을 이끌어가는 인물을 연기한다. 임신 중에 외국 대사를 접대하라는 명령도 수행한다.

“련정희 역은 참 불편했어요. 그동안 내지르는 연기에서 희열을 느꼈던 것과 달리 속내를 표현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으니까요. 갑갑했죠. 하지만 그런 감성 연기를 하면서 색다른 즐거움도 맛봤습니다.”

액션 연기도 한 템포 눌러 표현해야 했다. 련정희가 남편을 엄호하기 위해 총을 집는 장면이 한 예다. ‘블러드’ ‘도둑들’ 등에서 총과 칼 액션을 두루 경험한 그가 총을 집어들자 류 감독이 갑자기 자제를 요청했다.

“기분이 좋으면서도 걱정이 되더군요. 액션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니까요. 지붕 위로 도망치는 장면에서도 와이어를 몸에 감고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지만, 련정희는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배역이었어요.”

가장 큰 문제는 낯선 베를린에서 촬영하며 컨디션이 뚝 떨어진 것이었다.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그로서는 잠자리와 식사, 샤워 등을 제때 하지 못해 괴로움이 컸다고 한다.

“북한 사투리 연기는 출연진 중 최고란 칭찬을 들었습니다. 사투리나 외국어로 연기하다보면 억양에 신경쓰느라 감정을 잘 살리지 못하는데 저는 억양보다 감정을 전달하는 데 가장 신경썼어요. 적당한 억양에 사투리로 말하니까 감정을 전달하기 편해지더라고요. 일상적인 말로 연기할 때는 감정을 잡기도 전에 ‘후루루’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북한 사투리는 한 탈북자에게서 배웠다. 북한에서 위성접시 TV를 통해 그가 출연한 드라마와 광고 등을 접한 탈북자가 한눈에 알아봤다고 한다. 차기작에 대해 물었다.

“나이를 먹고 결혼도 했으니까 제 역할에 변화가 있을 거예요. 제 자신이 어색할 수도 있는 배역을 할 때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도둑들2’를 만든다는 소문을 들으니까 ‘몸 관리 잘해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어요.”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