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올 하반기부터는 뇌물 횡령 등 권력형 부패사건이나 기업사건, 강도 살인 등 흉악범죄의 경우 피고인이 원하지 않더라도 국민참여재판에 넘겨져 배심원들 앞에 서게 된다. 또 판사는 배심원들의 유무죄 결정에 원칙적으로 따라야 한다. 대법원 국민사법참여위원회는 지난 18일 제7차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아 국민참여재판제도의 최종형태를 의결했다고 23일 발표했다.

◆배심원 유무죄 결정, 따르는 게 원칙

위원회는 우선 피고인이 신청하지 않더라도 검찰 신청이나 법원 직권으로 국민참여재판에 넘길 수 있도록 했다. 지금은 법정형이 사형, 무기 또는 단기 1년 이상의 징역·금고에 해당하는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신청하는 경우만 국민참여재판이 열린다. 법원행정처 측은 “오원춘 사건 등 사회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사건에서 일반의 정서를 판결에 반영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기업이나 화이트칼라의 업무상 배임 및 횡령죄,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의 뇌물범죄 등도 검찰과 법원이 필요성을 인정하면 배심원에게 유무죄 판단과 양형을 맡길 수 있다.

배심원의 유무죄 결정인 평결에는 ‘사실상의 기속력’을 부여하기로 했다. 이는 판사가 배심원의 결정과 다른 판결을 내리더라도 위법한 것은 아니지만 원칙적으로 배심원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배심원 평결의 절차·내용이 법률에 위반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평결과 달리 판결할 수 있도록 법에 명문화할 방침이다. 평결 성립 요건을 현행 ‘과반 찬성’(단순다수결)에서 ‘4분의 3 이상 찬성’(가중다수결)으로 조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은 판사가 배심원 평결을 참고는 하되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 ‘권고적 효력’만 있다.

형의 범위를 정하는 양형에 관한 배심원의 의견은 현행과 마찬가지로 권고적 효력만 유지키로 했다. 미국에서는 배심원이 유무죄를, 판사는 양형을 결정하며(배심제) 독일과 프랑스는 배심원이 판사와 함께 유무죄와 양형을 결정(참심제)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총 848건의 국민참여재판에서 판사가 배심원의 평결과 동일한 판결을 내린 비율은 90%가량이다. 이 밖에도 위원회는 배심원단 보기가 불편하다는 검찰 측 의견을 반영, 검사와 피고인 및 변호인이 민사법정과 마찬가지로 판사석을 향해 나란히 앉도록 좌석배치를 바꾸었다.

◆위헌소지, 재판지연 등 부작용도

위원회는 내달 18일 공청회를 열어 최종안을 확정하면 대법원장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국회 입법절차라는 또 하나의 산은 남아 있다. 국회가 위헌 여부를 문제 삼을 수 있어 시행시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행정처 측 설명이다. 헌법 27조는 모든 국민은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배심원이 사실상 유무죄를 결정할 경우 위헌소지가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확대되면 여론재판이 난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사실상 기속력(羈束力)


배심원의 결정(평결)에 판사가 따라야 하는 정도가 기속력이다. 대법원은 평결이 위법하거나 현저히 부당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원칙적으로 배심원의 결정에 따르도록 법을 개정키로 했다. 이렇게 되면 기속력이 있는 것과 같게 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